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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타협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보호 / 예레미야 37:11–2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타협없는 사역과 하나님의 보호
예레미야 37:11-21을 다음과 같이 세 단락으로 나누어 요약하겠습니다:
1.
예레미야의 체포 (11-15절)
바벨론 군대가 바로의 군대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떠났을 때,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에 가서 백성 중에서 자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문에 이르렀을 때, 하나냐의 손자이자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는 시위대장이 그를 붙잡고 바벨론 사람에게 항복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리야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관리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관리들은 예레미야에게 화를 내어 그를 때리고 요나단의 집에 있는 옥에 가두었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32장에서 이 사건을 확인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집안의 땅을 상속하기 위해서 가려던 길이었습니다. 분명히 예레미야에게는 억울한 일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뿐이지만, 국가적 상황에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억울하게 매를 맞고 토굴에 투옥이 됩니다.
예레미야의 체포
예레미야의 억울함
2.
시드기야 왕과의 비밀 면담 (16-19절)
예레미야가 지하 감옥 음침한 방에 오래 갇혀있습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갇혔다는 언급이 예레미야의 고난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보여줍니다. 이때 시드기야 왕이 그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왕은 비밀리에 "주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시드기야의 말은 어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 되돌이키라는 것과 바빌로니아가 심판을 행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다른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것은 계속해서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상황을 더 낫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일종의 협박 또는 협상 일 수도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타협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시드기야가 듣고 싶은 말을 한다면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어 갈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자신이 왕이나 신하들, 백성에게 무슨 죄를 지었기에 옥에 갇혔는지 묻습니다. 예언자는 ‘이뤄진 일’에 의해서 그 말의 진실성이 판가름 납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고해왔고 실재로 그렇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상황은 점점 이스라엘에게 불리해지고 있고 시드기야가 마지막 희망으로 붙잡던 이집트도 그 힘을 잃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왕이 이 땅을 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던 거짓 예언자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진실을 말하고도 당하는 부당한 처우에 대해 호소합니다.
시드기야 왕과의 면담
한결같은 하나님의 답변
3.
예레미야의 처우 개선 (20-21절)
예레미야는 자신을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구절은 예레미야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드문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그만큼 가혹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전했다는 말이고 그런 상황에도 결코 타협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인간적인 가혹함을 호소할 때, 의아하게도 시드기야는 그 말에 호응합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근위대 뜰에 가두고, 빵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빵 한 덩이씩 그에게 주도록 명령했습니다. 시드기야 또한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어느정도 존중을 표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뤄지는 모든 상황을 제대로 말해준 것은 예레미야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어도, ‘현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는 엄혹한 상황입니다.
예레미야가 빵을 받는 일은 성중에 빵이 떨어지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빵이 떨어질때까지만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예루살렘 성 안의 식량 사정 자체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멸망이 임박해오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인간적인 호소
시드기야의 선처
타협없는 메시지와 보이지 않는 은혜
우리는 이 장면에서 예레미야가 엄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결코 수정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는데서 큰 도전을 받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만큼만 타협할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결코 그런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가혹함에서 조금은 풀려나기를 구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개인적인 고난 가운데서 시드기야가 그의 말을 들어준 것은 어쩌면 시드기야의 마음이 풀어져서도 있겠지만, 그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섭리적인 보호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의 개인적인 고난에도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예레미야를 여전히 보호하고 계시며, 그 메시지를 결코 멈추실 생각이 없으시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붙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속에서 우리가 비록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환경에 놓여질 수도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이뤄졌지만,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최고의 영예와 기적으로 그 생명을 일으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삶에서 참된 복음의 가치를 잃지 않으며 순수하게 지켜 나아가길 바라고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시죠
예레미야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힘
시드기야는 메시지의 타협을 은근히 질문함
예레미야는 타협없이 하나님의 말씀 선포
예레미야의 호소에 시드기야가 반응함
타협없는 순종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