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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외딴 곳에서 일어난 일 / 마가복음 1:35–45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35 아주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우리가 어제 나눈 본문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께서 ‘안식’을 경험하게 만드신 이야기였다. 그러나 안식의 주인이신 분께서는 안식하지 못하셨다. 쉼없이 사람들을 고치셨다. 얼마나 피곤하고 지치는 사역이었을지 상상된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외딴 곳에서 기도하신다.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셨던 장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 외딴 곳이 시험받으시던 광야는 아니었지만 둘 모두 에레모스라는 단어로 표현되어있다. 광야가 외롭고 고독한 장소였듯이 ‘외딴 곳’도 그렇다. 단절된 장소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심으로 아버지와 성령과 교제하셨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
37 그들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39 예수께서 온 갈릴리와 여러 회당을 두루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예수님의 사역은 점차 넓어진다. 가까운 여러고을과 여러 회당으로 두루 찾아가셔서 이전에 하셨던 일, 말씀 전함과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행하신다.
우리는 최초의 아담이 에덴에서 받았던 명령이 에덴을 확장하라는 내용이었다는 점을 염두해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확장되는 것이며 그야말로 에덴이 확장되는 것이다.
앞절과 연결되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광야로 나가심과 에덴이 확장되는 모습은 대비된다. 예수님은 더욱 고독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것이다. 반대로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은 점점 더 넓어져 약속의 땅을 넘어 전세계로 확장될 것이다.
40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42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로 나와서 고쳐달라고 요청한다. ‘나병’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사회적 제약과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나병은 사회적으로 격리되어야 했고 종교적으로 부정한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장면이 얼마나 긴장되는 사건이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인들 모두가 경악하며 긴장한 상태로 이 모습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41절은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다 라고 되어있지만, 원어의 뜻은 ‘분노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왜 분노하시며 그를 고치시려고 하시는걸까? 그것은 아마도, 이렇게 만들어진 분위기와 종교적 상황 등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그런 해석이 ‘불쌍히 여기다’ 라는 뜻과 잘 연결될 것이다. R. T. 프란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 질병에 의해서 야기된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고통이 불쌍히 여김을 야기시켰고 그런 악이 존재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시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금기에 무리가 반응했을 태도에 대해서도 이 분노는 일어났을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인정과 분노가 결합되어 질병은 치유된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고치셨다는 점 또한 지적될 수 있겠다.
부정한 나병환자를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정이 옮지 않으신다. 오히려 부정을 치료하시고 고치신다.
43 예수께서 단단히 이르시고, 곧 그를 보내셨다.
44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나가서, 모든 일을 널리 알리고, 그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방에서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규정은 무시하셨지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종교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그래서 곧바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치유를 증명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그 모든 일을 함구하게 만드신다. 강력한 침묵에 대한 명령과 감정적 분노가 연결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이 일로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예수님은 인기를 얻게 되셨다.
그러나 마가의 설명은 또 다시 예수님께서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계셨다고 설명한다. 이곳은 기도하시던 곳과 동시에 원래대로라면 나병환자가 쫓겨나 살아야했던 곳이기도 했다. 두 설명 모두에서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그리게 만든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외딴 곳, 고독과 배척된 자들의 장소로 가신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된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를 고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길 속에서 치유와 기적과 말씀선포를 행하신게 아니었다. 그분은 계속해서 외롭고 고독한 장소로,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선포하시고 증명하신다. 원래 우리의 자리였어야할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삼위하나님의 교제를 이어가시며 그곳에서부터 치유와 기적을 일으키신다. 우리의 비참한 삶이 원래 놓여져있어야할 곳으로 예수님이 찾아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선포하실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참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될 줄 믿는다. 오늘 그 임재를 간절히 바라고 사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1.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외딴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엄청난 사역과 피로에도 외딴 곳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성령과 교제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사역은 점차 넓어져 여러 마을과 회당을 찾아가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복음'은 쉬지않고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새로운 아담은 에덴을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3.
나병에 걸린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치료를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부정하다는 규정을 무시하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회적, 영적 분위기에 분노하심과 동시에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4.
예수님은 나병 환자의 증언 때문에 바깥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외딴 곳에서도 예수님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확장되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외딴 곳을 마다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