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QT] 증인의 삶 / 사도행전 22:30–23:1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30 이튿날 천부장은 무슨 일로 유대 사람이 바울을 고소하는지, 그 진상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바울의 결박을 풀어주고, 명령을 내려서, 대제사장들과 온 의회를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그들 앞에 세웠다.
1 바울이 의회원들을 주목하고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2 이 말을 듣고,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산헤드린은 유대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는 유대 법정 역할을 했다. 따라서 천부장은 산헤드린을 통해서 바울 주변으로 일어나고 있는 소요에 대해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산헤드린 앞에 서게 만든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이전 본문에서 계속 강조해왔던 것처럼 바울은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폐기를 주장하거나 자신 스스로 ‘오염’시킬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성전의 주인이신 분께 명령받은 일을 한 것 뿐이다. 이전 본문에서 이어지는 변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전 장면에서 ‘성전을 모독한 것’이 아님을 계속해서 변론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끊어져 버린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자세한 상황이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체벌과 폭력이 가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매우 모욕적인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제사장에 의해서 가해지는 이 모욕과 폭력은 예수님의 심문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3 그러자 바울이 그에게 말하였다.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당신이 율법대로 나를 재판한다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서, 나를 치라고 명령하시오?”
4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모욕하오?”
5 바울이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소. 성경에 기록하기를 ‘너의 백성의 지도자를 욕하지 말아라’ 하였소.”
바울은 자기의 입을 때리라고 명령한 사람에게 ‘회칠한 벽’, 외식하는 자요 율법대로 재판한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율법을 거스르는 자라고 이라 아주 맹렬하게 비판한다. 역사에 따르면 아나니아는 거만하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었으며 대제사장직에 대한 정당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바울이 그런 대제사장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회칠한 벽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 위선에 대한 선지자적 고발이며 경고였다.
사람들이 대제사장을 모욕한다고 반발하자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고 말한다. 이것이 정말 몰라서 급하게 변명하느라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보수적인 해석을 따르면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그런 식의 언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러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대제사장일리 없다’라고 풍자 로 말한것이었다. 따라서 역으로 대제사장의 거만하고 성미가 급하며, 거룩한 삶과는 동떨어진 ‘회칠한 벽’같은 자가 ‘율법’을 들먹거리며 재판하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말이다.
6 그런데 바울이 그들의 한 부분은 사두개파 사람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파 사람인 것을 알고서, 의회에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바리새파 사람의 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7 바울이 이렇게 말하니,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회중이 나뉘었다.
8 사두개파 사람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그것을 다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제사장적 귀족들로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시키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로마에 대해 동질 의식을 갖는, 신학적으로는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에대한 해석을 통해 율법의 뜻을 밝히고 로마에대해 반대의 입장을 가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침묵하는, 신학적으로는 진보적인 사람들이었다. 이 둘의 상극의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부활’논쟁이었다. 예수님도 바로 이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인들 간의 부활 논쟁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하셨다.
바울은 이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 때문에 재판받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상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것이 복음의 핵심 진술이다. 그런데 그 ‘부활’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들에 의해서 바울의 언급은 무시 당했을 것이다.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새인들에게있어서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시라는 사실에서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두 진영은 ‘예수’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신학도 비난함으로 거대한 분열이 생겼다.
9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바울 편을 들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10 싸움이 커지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길까 염려하여, 군인더러 내려가서 바울을 그들 가운데서 빼내어, 병영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다.
11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우리는 과연 산헤드린 속에 그리스도인이 아예 전무했는가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아리마대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의 경우 산헤드린 일원으로 요한은 요셉을 ‘제자’ 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오늘 본문도 바리새파 사람 중에 ‘몇 사람’ 일부, 소수가 바울 편을 들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 관용적인, 또는 숨겨진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이런 견해의 표명은 점점 상황을 격하게 만들었고 천부장은 바울이 찢길까봐 염려할 정도였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빼내어져서 병영 안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바울은 생명이 일각에 달려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지나가고 있지만, 이미 각오된 일이었다. 성령께서 이런 일들을 이미 예고하셨었고 믿음의 형제들을 통해서 가지 말것을 계속해서 권면받았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바로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주님은 바울에게 더욱 큰 확신을 주신다. 바울의 이방인을 향한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큰 사역의 장이 예고되었는데, 바로 ‘로마’, 세상의 중심 곧 끝이다. 예수님의 이 감격적인 선언은 선교사의 가슴을 다시금 불타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달려갈 길이 남아있다.
이 마지막 말씀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증인됨과 증언자로써의 삶을 두려움없이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증언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을 두려움 없이 붙들어 주시는 주님을 만나게 될 줄 믿는다. 바울이 용기있게 그 복음을 전한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