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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종말 / 마가복음 1:12-2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는 장면이 매우 축약적으로 등장한다. 어떤 시험이 있었는지, 어떻게 이기셨는지에대한 내용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가의 강조점은 어떤 시험을 당하시고 이기셨는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가는 예수님의 시험의 어떤 부분을 강조하는가?
우선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고 말한다. 광야는 신비롭고 고요한 공간이지만 위험한 공간이기도하다. 게다가 사탄이 던지는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광야로 들어가셨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광야, 그 고독하고 외로운 장소를 향해 보내실 때 예수님은 기꺼이 순종하셨다. 앞으로 성령께서 더욱 큰 시험의 자리로 이끌어가실 것이다. 그 장소는 더욱더 잔혹하고 끔찍할 것이다. 그 십자가의 자리에 이르실 때까지 예수님은 광야 길을 선택하신 것처럼 십자가에 오르길 순종하실 것이다.
오늘 본문은 광야에 있었던 존재들을 설명하는데, ‘사탄’, ‘들짐승’, ‘천사’, 그리고 홀로 선 한 인간 예수시다. 광야라는 장소만 빼면 각각의 요소들은 에덴을 떠올리기 쉽다. 에덴에 들짐승들이 있었고, 천사들이 있었으며, 사탄의 시험이 있었다. 우리가 앞서 광야가 가지는 이미지가 새로운 출애굽과 새로운 창조라는 점을 생각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이전의 에덴에서 아담이 받았던 시험을 다시 받는 ‘새로운 아담’이다. 그러나 아담의 실패와 다르게 시험에 승리하셨으며, 천사들의 배척과 쫓겨남이 아니라 시중을 받으시는 분으로써 등장하신다.
마가복음의 시작은 새로운 창조, 새로운 출애굽, 새로운 아담 같은 요소들이 사용되어 ‘복음의 시작’이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15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요한의 체포와 투옥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 뒤 예수님의 사역이 집중된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핵심주장은 분명하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우리가 복음이란 단어가 황제의 통치 또는 신적인 만남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 것처럼 이제 예수님의 선언에는 하나님에 관하여,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좋은 소식일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재개되었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때가 찼다’ 라는 표현을 통해서 일종의 ‘성취’된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적 측면의 성취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선포로 지금 성취되고 있는 중이며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16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8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에 대한 과감하고 급진적인 선언이 이뤄지고난 이후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장면은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황’이다.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하고 평범한 일상속에 하나님 나라가 침투해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부터 시작된다. 사람을 낚게 만들겠다는 표현의 구약의 사용은 ‘심판’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심판’을 생각하시며 이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심판이 ‘종말적’이라는 점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일, 즉, 제자가 되는 일이 ‘종말적’이라는 점과 연결되어 보일 수는 있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이 세상의 가치관과 통치체계가 끝났고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종말적 사건이자 선포였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 공동체를 부르신 것은 이 종말적 역사가 이제 막 시작되리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는 본문에서 창세기의 시작의 이야기와 말라기 마지막을 엿보는것만 같다. 그 창조와 심판의 이미지가 본문에서 드러나고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온다는 것이 놀랍다. 바로 우리의 일상이 그 창조와 심판의 이야기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읽게 된다면 오늘 본문은 굉장히 신선하게 읽혀진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뚫고 제자가 되는 ‘종말적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나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으로서, 에덴에서의 시험을 다시 받았지만, 아담과는 다르게 성공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복음 선언은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3.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일상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