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당신들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당신들을 이끌어들이실 것입니다. 거기에는 당신들이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11 당신들이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당신들이 파지 않았지만 이미 파놓은 우물이 있고, 당신들이 심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당신들은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입니다.
12 당신들이 그렇게 될 때에, 당신들은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당신들을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3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십시오.
이스라엘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땅이다. 그곳에서 차지하게 될 땅과 성읍은 온갖 좋은 것들로 가득차있다.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물처럼 주신 것이다. 여기에서 매우 큰 함정을 발견하게 된다. 그 놀라운 풍요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공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위험을 잊어서는 안된다. ‘잊지 않기 위한 경고’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만 섬기고, 그분의 이름만을 가장 높은 권위로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만이 비로소 풍요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고 붙잡을 수 있다.
14 당신들은, 당신들 가까이에 있는 백성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에, 그 어떤 신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15 당신들 가운데 계시는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분노하시면, 당신들을 땅 위에서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우상숭배도 강력한 문제다. 가나안 땅은 강력한 우상숭배의 땅이었다. 그들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고 말하는 신들의 유혹은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장대하고 거대한 그들을 굴복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들의 문화에 뿌리깊이 놓여있는 우상까지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상들은 ‘사랑’없는, 인격없는 비인격적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분노하시는 하나님으로써 관계에 신실하기를 요구하신다.
16 당신들이 맛사에서 시험한 것처럼,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17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과 그가 명한 훈령과 규례를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18 당신들은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올바르고 선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잘 되고,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저 좋은 땅에 들어가서, 그 곳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19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당신들 앞에서 당신들의 모든 원수를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신들을 거절할 때,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며 ‘시험’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믿기 위한 의심’과 ‘믿지 않기 위한 의심’은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 여기에서 시험은 믿지 않기 위한, 의심을 위한 의심이다.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대로 움직이시는가 시험해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맛사의 사건이 그런 종류의 기적으로, ‘물’을 내려달라 아니면 이집트로 돌아가겠다 대들었던 사건이었다. 하나님을 자신의 도구화 시키려는 시도와 다름 없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후에 예수님께서 40일 광야의 시간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을 인용하시며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었다.
20 나중에 당신들의 자녀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명하신 훈령과 규례와 법도가 무엇이냐고 당신들에게 묻거든,
21 당신들은 자녀에게 이렇게 일러주십시오. ‘옛적에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으나, 주님께서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22 그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데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로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온 집안을 치셨다.
다시금 주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으로 돌아온다. 언약의 기능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나눴었다. 그들에게 계속해서 하나님이 어떤일을 하셨는가에 대해서 가르칠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하나님 언약의 신실하심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고 가르칠 수 있다. 언약의 당사자들인 이스라엘은 이 일을 책임있게 완수해야 한다.
23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으로 우리를 데려오시고,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24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명하여 지키게 하시고, 주 우리의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오늘처럼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잘 살게 하여 주실 것이다.
25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 것이다.’ ”
충실한 명령의 수행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것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여기시고 약속의 땅에서 잘 살게 해주시는 은혜를 허락하실 것이다. 우리의 의는 자유, 생명과 행복을 하나님의 선물로 누리는 자들의 감사에서 나오는 순종의 반응이다. 그것은 선후관계를 분명하게 한다.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함으로 경외하는 것이 ‘의롭게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지, ‘순종해서 획득’ 할 수 있는 차원의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모든 전쟁과 정복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은혜로 제공해주신것에 대해서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을 ‘우리의 의’로 여겨주심을 얻을 뿐이다. 그 당연한 반응을 온전히 하지 못함으로써, 이스라엘은 스스로 ‘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기 의에 빠지기도 하고, 스스로 땅을 차지한 것인양 주인되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도 한다. 그들은 이 모든 은혜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이해와 동일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획득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제공된 것이다. 그 은헤에 합당하게 반응할 때, 하나님은 넘치는 사랑과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심을 나타내 보이실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 의로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주도권이 사라지고 ‘자기 의’에 도취된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다.
결국 큰 틀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사랑’ 해야 한다. 그 사랑이 그들을 ‘반응’하게 만들고, 그 반응이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만들어 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게 될 것이며, 자기 의로움을 만들어내려고 안간힘을 쏟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하신 모든 일들은 더욱 더 놀라운 은혜의 사건으로 우리에게 경험된다. 오늘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지며, 그 사랑에 더욱 신실하고 열렬히 반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이스라엘은 풍요로웠지만, 그 풍요함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2.
우상숭배는 위험한 유혹이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잊게 만드는 문제를 일으킨다.
3.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태도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잊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4.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로 여겨지며,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에 대한 우리의 감사함에서 나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