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38:1-13을 다음과 같이 세 단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별로 3분 정도 말할 수 있는 분량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렘 38:1-6 -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지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은 예레미야가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여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시드기야 왕에게 가서 예레미야를 처형해달라고 요청했고, 왕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했습니다.
여기에서 시드기야가 왜 그렇게도 이집트와 손을 잡고 바빌로니아의 힘을 막아보려고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빌로니아에 의해서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국정운영에서 허수아비 왕일 뿐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나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그대들을 반대하겠소’라고 자조섞인 말로 예레미야 가두는 일을 허락합니다.
시드기야가 정말 힘을 찾고 싶었다면, 인간적 방법을 사용해서 힘을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돌이킴으로 얻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가지려고 했던 힘은 스스로 무덤에 내려가게 만들 뿐입니다.
관리들은 예레미야를 잡아 물 없는 진흙 구덩이에 밧줄로 내려보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진흙 속에 빠져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대가로 예레미야가 겪은 극심한 고난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2.
렘 38:7-9 - 에벳멜렉이 왕에게 간청하다
에티오피아 사람 에벳멜렉은 예레미야의 상황을 듣고 왕에게 가서 그를 구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구덩이에서 굶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 ‘성 안에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다’ 라는 보고는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를 엿볼수있게 만듭니다. 심각해져가는 상황 속에서 고관들은 ‘정의’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자신의 지위보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에벳멜럭은 그는 자신의 지위와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를 위해 나섰습니다. 에티오피아가 남 이집트 지역이라는 점과 ‘에벳 멜렉’ 이라는 이름의 뜻이 왕의 하인, 왕의 종 이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금 현재 유다가 힘을 빌리는데 의탁하고 있는 이집트 쪽의 힘을 ‘왕과 고관’이 아니라, 예레미야가, 왕의 종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하나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힘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왕과 고관들은 결코 그 힘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비참하고 비극적인 죽음 앞에 놓여서 어떤 힘도 얻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예레미야가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도움과 힘을 얻습니다. 이 배후에 힘을 제공하시는 분은 ‘하나님’, 유일한 왕 이십니다. 에벳멜렉이 왕의 종이라는 뜻을 다시 기억해보면, 하나님의 종으로 일하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이 도움의 손길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는 섭리였을 것입니다.
3.
렘 38:10-13 - 예레미야가 구덩이에서 구출되다
시드기야 왕은 에벳멜렉의 요청을 받아들여 예레미야를 구출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에벳멜렉은 사람들과 함께 가서 헝겊과 낡은 옷가지를 구해 예레미야에게 내려보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이 천들을 겨드랑이에 대고 밧줄을 묶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예레미야를 조심스럽게 구덩이에서 끌어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에벳멜렉의 지혜와 친절을 통해 예레미야를 구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때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우리 스스로 힘을 찾고 구해봐야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힘과 능력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우리의 생각과 예상을 뛰어넘는 힘을 얻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계획 너머에서, 우리의 힘들고 괴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힘과 능력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기가막힐 웅덩이에서 꺼내셔서 단단한 반석 위를 걷게 하실 주님을 바라고 기대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