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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의 복수를 위한 기도 / 욥기 27:1–23/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욥이 비유로 말하였다.
2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다. 그분께서 나를 공정한 판결을 받지 못하게 하시며,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 괴롭게 하신다.
3 내게 호흡이 남아 있는 동안은, 하나님이 내 코에 불어 넣으신 숨결이 내 코에 남아 있는 한,
4 내가 입술로 결코 악한 말을 하지 않으며, 내가 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5 나는 결코 너희가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죽기까지 내 결백을 주장하겠다.
6 내가 의롭다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굽히지 않아도, 내 평생에 양심에 꺼림칙한 날은 없을 것이다.
고통을 재구성하시며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했던 욥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발언을 이어간다.
욥은 하나님 앞에 ‘맹세’ 한다. 이것은 매우 강력한 주장이며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에 대한 주장이다. 그 진실은 하나님께서 욥을 매우 몹시도 괴롭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에 대한 결과가 아니며 모든 것을 알고계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럼에도 욥은 이 상황에 대한 거짓이나 악의적인 불평과 저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욥기의 처음에서 하나님도 이 부분을 인정하셨었다.
친구들은 그런 욥을 계속해서 비난했다. 욥이 거짓된 의로움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이란 죄의 결과물이니 회개하라고 비난했다. 그런 친구들의 주장은 거짓이다. 욥은 그럴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욥은 양심에 꺼림칙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7 내 원수들은 악한 자가 받는 대가를 받아라. 나를 대적하는 자는 악인이 받을 벌을 받아라.
8 하나님이 경건하지 않은 자의 생명을 끊고, 그의 영혼을 불러 가실 때에, 그의 희망이란 과연 무엇이겠느냐?
9 환난이 그에게 닥칠 때에, 하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겠느냐?
10 그들은 전능하신 분께서 주시는 기쁨을 사모했어야 했고 그분께 기도했어야 했다.
본문의 발화자에 대한 논쟁이 있다. 이것이 욥이 말하는 것인지, 친구 또는 친구들의 말을 빌려오는 것인지 불분명해보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내용의 발화자는 ‘원수’들이 벌을 받고 환란이 닥치며 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어주지 않으실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만약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욥’이라면 욥은 원수들은 그런 상황에 빠지기를 바라면서도 자신이 그런 ‘악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바에 따라 욥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간의 제한된 경험으로 파악하기란 어려우며 죽음을 초월하여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원수와 악인들이 최종적으로 벌을 받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그것이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11 날더러도 하나님의 응답이 얼마나 큰지 가르치라고 해 보아라. 전능하신 분께서 계획하신 바를 설명하라고 해 보아라.
12 그러나 그만두겠다. 이런 일은 너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그처럼 터무니없는 말을 하느냐?
13 하나님이 악한 자에게 주시는 벌이 무엇인지, 전능하신 분께서 폭력을 행하는 자에게 주시는 벌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나님의 일하심이 얼마나 큰지 아무리 설명하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이 논쟁은 ‘터무니 없는 말’이다. 한마디로 의미없는 말들의 연속이다. 뜨거운 바람 같은 말은 아무 결과물도 안남는 ‘허무한 것’이며 시들고 마르게 만들어버리는 것들이다. 그러나 더욱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허무한 말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악한자들에게 내리시는 벌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 앞에 설 때 악인이 서있을 수 있는 자리는 없다.
14 비록 자손이 많다 해도, 모두 전쟁에서 죽고 말 것이다. 그 자손에게는 배불리 먹을 것이 없을 것이다.
15 살아 남은 사람은 또 염병으로 죽어 매장되니, 살아 남은 과부들은 기가 막혀서 울지도 못할 것이다.
악인들의 자손이 모두 전쟁에서 죽는 것과 자손에게 배불리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은 친구들이 상정했던 악인의 최후다. 우리는 욥 또한 악인이 받는 벌을 긍정한다는 것 또한 살펴봤었다. 자손의 죽음과 염병의 고통, 살아남은 과부의 등장은 ‘욥’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악인이 당하는 고통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발언이 욥의 직접적 발언인지 아닌지는 매우 불분명하고 논쟁의 여지도 많지만 13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 일들을 시행하시는 주체는 친구들이나 욥이 아니다. [하나님, 전능하신 분께서 주시는 벌]이다. 그분께서 누구에게 벌을 내리시는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욥은 분명히 이 말들을 원수들에게 되돌리고있다. 하나님 원수들에게도 이 일을 행해주십시오.
16 돈을 셀 수도 없이 긁어 모으고, 옷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아도,
17 엉뚱하게도 의로운 사람이 그 옷을 입으며, 정직한 사람이 그 돈더미를 차지할 것이다.
18 악한 자들이 지은 집은 거미집과 같고 밭을 지키는 일꾼의 움막과 같다.
19 부자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지만, 그것으로 마지막이다. 다음날에 눈을 떠 보면, 이미 알거지가 되어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욥이 이미 당한 일이다. 욥은 부자였지만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어버린 상황을 경험했다. 욥이 당한 것이라면, 원수인 악인들이 이런 일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너무나 손쉬운 일이다.
20 두려움이 홍수처럼 그들에게 들이닥치며, 폭풍이 밤중에 그들을 쓸어 갈 것이다.
21 동풍이 불어와서 그들을 그 살던 집에서 쓸어 갈 것이다.
22 도망 치려고 안간힘을 써도, 동쪽에서 오는 폭풍이 사정없이 불어 닥쳐서, 그들을 날려 버릴 것이다.
23 도망 가는 동안에 폭풍이 불어 닥쳐서, 무서운 파괴력으로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할 것이다.
홍수와 폭풍, 뜨거운 동풍의 파괴력은 앞서서 벌어졌던 전쟁이나 부자에 대해 벌어지는 일들, 즉 인간적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과는 다른 카테고리다. 다시 말해 홍수, 폭풍, 뜨거운 동풍은 자연재해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악인들에게 이런 자연재해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를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트램퍼 롱맨 3세는 욥기 주석을 쓰면서 이런 저주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 제기에 대해 설명한다. 저주의 내용들은 매우 직설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비열한 소망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하게 지적하는 것처럼 정직하고 숨기지 않는 태도로 고통을 가한 자들에 대한 복수를 감행해주시길 구하는 소망을 ‘직접’ 행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욥이 하나님과의 완전히 단절된 관계에서 오는 절망이 모든 고통의 시작이라고 나눴었다. 그렇다면 욥의 저주에 대한 이야기는 끊어지고 단절된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끝까지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욥이 원수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복수하실 것을 바라는 것을 보게 된다. 모든 것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복수를 행하실 수도, 행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어진 관계처럼보이는 속에서도 여전히 연결된것처럼 깊은 속이야기를 있는 힘껏 내뱉는 욥의 태도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 대화와 간구들로 우리의 삶을 채워가는지 질문해보게 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끈질긴 연결고리를 만들어낼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재료가 될때,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가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끈질긴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길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은 모든 고통을 다루시며 관리하실 수 있으시다.
2.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고통의 범주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다.
3.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순간이 올 것이다.
4.
하나님의 시간을 믿는다면 단절되고 끊어진 상황에도 끝까지 기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