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기로 한 그 땅,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멸망시키시고, 당신들이 그들을 쫓아내어, 그 성읍과 집에서 살게 될 때에,
2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차지하라고 주신 땅에서 성읍 셋을 따로 구별하여 놓아야 합니다.
3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신 땅을 세 영역으로 구분하여 길을 닦아, 모든 살인자가 그 곳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하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그 땅’ 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서 살펴봐야한다. 아직은 미래적인 시점으로 표현하고 있는 정복은 하나님이 그 땅의 원주민을 멸망시키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땅이 주어지는 것의 시작과 과정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스라엘은 [그들을 쫓아내는 일]에 ‘동참’ 한다. 그들은 허락받은 땅, 하나님이 차지하라고 주신 땅에서 우선해서 해야 하는 일은 ‘성읍 셋’을 따로 구별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도피성을 강조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피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 이 ‘보호’의 조치가 얼마나 시급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거리감’으로 더욱 분명히 느껴진다. 세 영역으로 구분하고 ‘길을 닦아’서 빠르게 피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길을 닦으라는 번역은 ‘거리를 계산하라’고 번역될 수도 있는데, 시급한 도피와 위치의 분배를 생각할 때 거리를 계산하라는 번역이 더 나을 수 있다.
4 살인자가 구별된 성읍으로 도피하여 살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찍이 미워한 일이 없는 이웃을 뜻하지 않게 죽였거나,
5 어떤 사람이 이웃과 함께 나무하러 숲 속으로 들어가서 나무를 찍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나가 친구를 쳐서 그가 죽었을 경우에, 죽인 그 사람이 그 구별된 세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살 수가 있습니다.
6 도피성은 평소에 이웃을 미워한 일이 없는 사람이 실수로 이웃을 죽게 하였을 때에 자기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곳이므로, 그 곳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면 피살자의 친척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따라가서 죽일 터이니, 거리가 너무 멀어서는 안 됩니다.
7 내가 세 성읍을 따로 떼어 놓으라고 당신들에게 명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조건은 ‘의도치 않은 살인이다. 실수로 이웃을 죽였을 때 복수자들의 손에 피살된다면 또 다른 보복조치가 일어날 것이고 복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도록 또는 그 고리가 끊어질 수 있도록 도피성이 제공된다.
한편 3절에서 ‘거리를 계산하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도피성이 ‘멀어서는 안된다’라는 점이 지적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복수자들이 좇아와 복수를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8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당신들 땅의 경계를 넓혀 주시고 당신들의 조상에게 약속한 모든 땅을 당신들에게 주실 때에는,
9 또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당신들이 성심껏 지키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가 가르쳐 주신 길을 잘 따라갈 때에는, 이 세 성읍 말고 또 다른 세 성읍을 구별해야 합니다.
10 그리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살인죄를 지고 죽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살인죄 때문에 당신들이 책임을 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고 그 땅의 경계가 넓혀질때, 즉, 새로운 영토가 확장되었을 때, ‘세 성읍’을 더 구별하게 된다. 이 성읍들은 죄 없는 사람이 살인죄를 지고 죽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고 그에대한 책임이 공동체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더욱 확장된 도피성의 이름들을 알지 못한다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지명된 성읍은 셋 이외의 셋 인데, 이스라엘은 온전히 땅을 차지한 적이 없으므로 확장된 땅에서 도피성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11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서 해치려고 숨었다가, 일어나 이웃을 덮쳐서 그 생명에 치명상을 입혀 죽게 하고, 이 여러 성읍 가운데 한 곳으로 피신하면,
12 그가 살던 성읍의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에서 붙잡아다가 복수자의 손에 넘겨 주어 죽이게 하여야 합니다.
13 당신들은 그런 사람에게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안에서, 죄 없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만, 당신들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도피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미움으로 실재 살인을 계획해서 의도적으로 죽인 사람이다. 이런 살인자는 복수자의 손에 넘겨 주어 ‘죽여’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정을 베풀 수 없다.
강조되는 것은 죄 없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죄 있는 사람에게 마땅한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율법은 분노와 증오가 불의한 행위를 유발하기 십상이라고 말하는 중이고, 부당한 판단으로 억울한 자들의 심판 시행이 이뤄지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
14 “당신들은, 주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어 차지한 땅에서, 이미 조상이 그어 놓은 당신들 이웃의 경계선을 옮기지 마십시오.”
15 “어떤 잘못이나 어떤 범죄라도,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판정할 수 없습니다. 두세 사람의 증언이 있어야만 그 일을 확정할 수 있습니다.
16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나쁜 증인이 나타나면,
17 소송을 하는 양쪽은 주님 앞에 나아와,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재판관 앞에 서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땅을 주심을 강조하면서 ‘이미 받은 땅의 경계선’을 옮기지 말라고 명령된다. 경계선의 의미는 ‘하나님이 주신 유산’이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경계선을 옮기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차원을 뛰어넘어서 ‘영적측면’에서 하나님이 주신것을 거부하고 탐욕을 섬기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떤 잘못에 대해서 ‘두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서 강조한 것처럼 ‘억울한 죽음’과 ‘억울한 재판’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치가 두세 사람의 증언이다.
18 재판관들은 자세히 조사한 뒤에, 그 증인이 그 이웃에게 거짓 증언을 한 것이 판명되거든,
19 그 증인이 그 이웃을 해치려고 마음 먹었던 대로 그 이웃에게 갚아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들 가운데서 그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20 그러면 남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서, 이런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당신들 가운데서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21 당신들은 이런 일에 동정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다. 목숨에는 목숨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으십시오.”
만약 거짓말이 드러난다면 해치려고 계획했던 그대로 이웃에게 같아주어서 ‘악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할 것이다. ‘듣다’와 ‘두려워하다’ 라는 말이 하나님의 율법이 선언될 때 경험되었던 경험과 감정이라면, 악의 뿌리를 뽑는 과정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처럼 ‘억울한 죽음’과 ‘억울한 심판’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도피성도 만들어지고, 형벌도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제한됨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은혜로운 보호하심과 같은 실재적인 통치가 이스라엘 안에서 경험될 수 있어야 했다.
우리의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언제든지, 곧바로, 재빠르게 예수님께 피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억울한 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죄에대한 대가를 우리 주님이 대신 담당하셨다.
우리의 피난처, 도피성이신 예수님께 피하라. 신속히 피할 때, 우리에게 희망과 소망이 발견된다. 우리를 향하신 공의롭고 은혜로운 보호와 통치가 실재적으로 경험될 것이다. 참 도피성이신 예수님 안에 피하길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