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35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편견이 틀렸다는 점을 고백한다.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신다’라는 말은 사무엘상에서 다윗을 선택하실 때 사무엘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다윗을 선택하실 때도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꺼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깨지는 사건이었다. 베드로는 오늘의 사건이 마치 다윗이 선택되던 때와 같지 자신의 ‘세계관’이 깨지는 경험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같다. 베드로는 이 편견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민족에 속해있든지’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유대인들이 일차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정결법’을 통한 편견이 환상과 오늘의 만남을 통해 깨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37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베드로 설교의 독특한 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의 창조주시라는 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설교의 청중이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베드로가 설교하는 대상에게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베드로는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생략한다.
이것은 아마도 이들이 구약에 대해서 이미 알고있는 상태,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이들이라는 것으로 보아서 구약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그 말씀을 전하시는 분, 또는 그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 시라고 말함으로써, 구약의 내용이 ‘예수님’을 통해 충분히 축약되고 정리되고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전에도 누가가 기록하고 있는 방식에서 또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들을 통해서 설교가 가리키고 있는 ‘지시대상’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전달에도 결국 ‘예수님’이 만민의 주인이심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핵심이었다.
여기에서 만민의 ‘주인’이시라는 담대한 표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곳에 모인 가이사랴의 이방인들은 대부분 로마의 군인들일 것이다. 초대한 고넬료도 백부장이었고 그의 친구들도 군인의 신분으로서 휘하 장수들 또는 군대와 관련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들의 ‘주인’은 가이사랴, 곧 시저, 로마의 황제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예수님만이 만민의 ‘주인’ 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어서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한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하셨고,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예수님의 사역은 결코 예수님 홀로의 단독적인 사역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동역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신 일도 삼위 하나님의 함께 일하심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점이 계속 강조되는 것으로 보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말씀의 완성이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에 돌입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미리 택하신 증인들에게만 나타나셨다. 이 택하신 증인들은 예수님과 긴 시간 연합하고 준비된 제자들이었다. 예수님과의 경험은 그분과 먹고 마신 것으로 강조되는데, 오늘의 이야기도 먹는 것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이제 증인들의 사역이 더 넓은 예수님의 식탁을 제공하리라는 것을 기대하게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살아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사실을 선포하라고 증언하셨다는 점을 언급한다. 학자들은 고넬료 이야기가 많은 부분에서 요나의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욥바’에 대한 언급, ‘사흘길’, 심판에 대한 언급, 이방인들의 회심, 회심에 대한 분노표출반응 등이다. 이제 니느웨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의 긍휼로 그 도시가 보전되듯이, 이방인들인 고넬료의 공동체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죄로부터 건지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살리시는’ 은혜의 식탁 앞으로 초대되게 만드실 것이다.
4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에,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리셨다.
45 할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믿게 된 사람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온 사람들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부어 주신 사실에 놀랐다.
46 그들은, 이방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베드로가 말하였다.
베드로의 더 이상의 설교가 이어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설교 중에 이 말을 듣는 ‘모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내리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세례’ 즉, 회심과 회개의 표징이 있고난 후에 성령님의 임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기억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에게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것은 이들이 진정으로 회심하고 회개하며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할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인정하셨고, 은사로 인치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하며 찬양하는 일로 이어진다.
욥바에서 함께 온 성도들도 이방 사람들에게 성령이 선물로 부어진 사실에 대해서 놀라게 된다. 명백히 설교가 중단될 정도로 분명한 성령님의 임재에 그들도 이방인들이 하나된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음을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44절에서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에 욥바의 성도들도 포함된 것이라면, 성령께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로 묶으시는 위대한 장면을 보게 된다.
47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48 그런 다음에, 그는 그들에게 명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
베드로는 설교가 중단되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이 위대한 장면에서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넬료의 가정과 동료들에게 세례를 받게 한다. 물론 세례가 ‘구원의 표징’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다만 세례를 통해서 그들이 완전히 씻겨진 존재, 구원받은 존재로써 스스로의 인식을 확실히 표현하도록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땅 끝으로 확장되는 시작점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말씀 가운데서 구원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사역을 보게 된다. 이방인들의 회심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말씀의 지시 대상이 예수이시며, 말씀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 예수시며, 말씀으로 구원의 사역을 지속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만나게 될 때 회심과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는다. 그것이 당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한계와 껍질을 벗기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예수님의 말씀은 그만큼의 능력을 갖고 계시다. 오늘 말씀 묵상하며 그 위대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참되게 만나고 회심하고 변화되는 은혜가 오늘 우리의 삶에도 온전히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