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필QT] 하나님의 세계 / 욥기 38:1–18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그 때에 주님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2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3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욥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답변하신다.
그런데 이 만남은 사실 욥이 기대했던 방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욥이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해소해줄 만남 또는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맞서신다. 하나님은 욥이 무지하고 헛된 말로 하나님의 지혜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 안에 고통의 심연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갈 것이다. 그 본질적인 질문에 앞서서 보여지는 현상에대한 설명이 가능한지 질문하신다. 욥이라고해서 모든 세계의 진실을 파악할 수 없다. 이것을 통해서 누가 하나님이고 누가 피조물인지에대해 선명해질 것이다.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네가 그처럼 많이 알면, 내 물음에 대답해 보아라.
5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6 무엇이 땅을 버티는 기둥을 잡고 있느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7 그 날 새벽에 별들이 함께 노래하였고, 천사들은 모두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다.
땅의 기초가 놓였을 때, 어떤 설계를 통해 측량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욥은 알 수 없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우리는 잠언 8장에서 이 세계의 창조 질서가 ‘지혜’를 통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살펴봤다. 본문의 설명은 어떤 건물의 주춧돌과 주춧돌을 놓기 위한 측량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고대 문서들을 참고해볼 때 ‘성전’을 염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성전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말하는 것일리는 없다. 성전이 ‘우주’를 재현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한 원형으로써 천상의 공간, 우주의 시작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랬을때 새벽의 별들과 천사가 외치는 기쁨의 소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8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9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10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 빗장을 지른 것은, 바로 나다.
11 “여기까지는 와도 된다. 그러나 더 넘어서지는 말아라! 도도한 물결을 여기에서 멈추어라!” 하고 바다에게 명한 것이 바로 나다.
바다물과 흑암에 대한 표현들은 바다를 전통적으로 혼돈의 세력으로 이해하는 것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바다는 마치 하나의 인격으로 창조된 것처럼 느껴지도록 표현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경계지어주심에 따라서 넘어서서는 안되는 경계가 분명하다.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의 세력을 무방비하게 내버려두시는게 아니다. 분명하고 선명하게 한계를 만드신다. 그리고 그것을 만드신것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선언하신다. 누가 바다를 가두었느냐 질문하셨을 때, 욥은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혼돈과 공허에 대한 지혜가 없음은 당연하다.
12 네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네가 아침에게 명령하여, 동이 트게 해 본 일이 있느냐? 새벽에게 명령하여, 새벽이 제자리를 지키게 한 일이 있느냐?
13 또 새벽에게 명령하여, 땅을 옷깃 휘어잡듯이 거머쥐고 마구 흔들어서 악한 자들을 털어 내게 한 일이 있느냐?
14 대낮의 광명은 언덕과 계곡을 옷의 주름처럼, 토판에 찍은 도장처럼, 뚜렷하게 보이게 한다.
15 대낮의 광명은 너무나도 밝아서, 악한 자들의 폭행을 훤히 밝힌다.
계속해서 욥이 새벽에게 명령한 적이 있는지 질문하신다. 새벽과 대낮의 기능은 어두움을 물러가게 만듦으로써 악한자들이 발견되고, 그들의 폭행이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빛은 언덕과 계곡을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만드는데, 이 빛을 통해서 숨겨지는 것이 없이 모두다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은 매일처럼 새벽을 주심으로써 어둠을 물러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의 예시로써 어둠속에 숨길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악행들도 마침내 하나님의 빛 아래 모두다 적발될 것이다. 바다의 예시와 마찬가지로 결국 하나님께서 적발하실때 숨길 수 있는 악이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제어 아래 있다.
16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물 근원에까지 들어가 보았느냐? 그 밑바닥 깊은 곳을 거닐어 본 일이 있느냐?
17 죽은 자가 들어가는 문을 들여다본 일이 있느냐? 그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문을 본 일이 있느냐?
18 세상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어디 네 말 한 번 들어 보자.
바닷 속 심연과 밑바닥은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문’으로 여겨진다. 죽음의 세계는 욥이 차라리 가고자 하는 세계였다. 그곳에서 안식을 누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욥은 그 세계를 본일이 없기 때문에 그의 소망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죽음의 세계’에 대한 지혜와 연결시켜 이야기하실 때 당연히 욥은 ‘모른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에 대한 참 지식과 지혜를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 참된 지혜이신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시는 세계 안에서 우리의 세계를 발견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 발견하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우리는 큰 위로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천상의 시작점에서, 바다속 근원에서, 혼돈과 공허를 관리하시며 계속해서 빛을 비추심으로써 악을 적발하시는 분이시다. 악이 어떻게 시작되고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충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 곧 신비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악의 존재를 방관하시거나, 제어하실 수 없는 존재이거나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관리하시며 자신의 통제 아래 두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지혜가 최종적으로 악을 소멸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예고된 사실이고 이미 악의 존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이 파괴되었음이 세계속에 선포됨으로써 확정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이 일들이 온전하게 완성될 날을 기다린다. 그것이 욥에게는 감춰진 신비였고 알 수 없는 지혜였지만, 우리에게는 알려진 지혜가 되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다스리심과 통치를 바라보고 기대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대한 참 지식과 지혜를 가질 수 없다.
2.
하나님은 악과 무질서를 방관하시지 않고 적극적으로 제어, 관리하신다.
3.
하나님의 통치 아래 악이 완전히 정복되어 사라지는 때가 온다.
4.
그 예시가 십자가와 부활이다.
5.
욥에게는 감춰진 신비였지만, 우리에게는 알려진 지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