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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따뜻한 사랑의 교제와 기도 | 빌립보서 1:1-11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우리는 빌립보라는 도시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였던 필리포스 2세가 세운 도시였다.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의 적통을 가진 위대한 도시라는 인식이 있는 도시였다. 게다가 빌립보는 로마 시대에서 역사적인 공간으로 등장하는데, 율리우스 시저의 암살 이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브루투스의 군대를 무찌른 곳이 빌립보였다. 빌립보 전투를 통해서 로마는 황제 중심의 제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에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를 ‘식민지’로 만들고 전역 군인들에게 땅을 주고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친다. 우리에게는 식민지가 수치스러운 이름처럼 들리지만, 당시의 식민지는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이름이었다. 로마 식민지로써의 빌립보는 로마의 영광, 로마의 방식으로 살아갈 때 얼마나 안정되고 번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질적 예시였다. 한마디로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는 작은 로마였다. 우리는 빌립보서에서 ‘시민권’에 대한 이야기를 읽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시민권’이 빌립보에서 가장 능력있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로마 시민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울은 이 영광스러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빌립보의 교회에 편지하면서 다른 곳에서 종종 사용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종’이라고 한껏 자신을 낮춰서 소개한다. 이곳에서 사용된 ‘종’이라는 표현은 앞으로 빌립보서를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게 될 것이다. 인사의 대상자는 모든 성도, 감독, 집사들이다. 감독과 집사의 역할은 당시의 길드나 조직들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아마도 교회의 경제권을 담당하는 이로써의 감독과 식사를 책임지는 집사 이렇게 나눠졌을 것이다. 형태는 로마적이지만, 내용은 ‘성도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로 전혀 다른, 구별된 공동체가 되길 바랐을 것이다.
3 나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내가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합니다.
박영호는 주석에서
여러분에 대한 나의 ‘모든’ 기억 가운데, 여러분 ‘모두’를 위한 기쁨으로 드리는 나의 ‘모든’ 간구의 ‘모든’ 순간에, 나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번역했다.
‘모든’이라는 단어가 4번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4장에서도 이런 구조가 기도를 주제로 다시한번 등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은 기도에서 ‘모든’을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안에 시간과 공간, 감정과 기억, 공동체와 개인 모든 것이 얽혀서 기도가 ‘총체적’이어야 함을 선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5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선한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바울의 간구는 빌립보교회를 향한 칭찬으로 이어진다. 빌립보 교회가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의 입장에서는 ‘과도한 칭찬’이었을 것이다. 빌립보교회가 그렇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바울의 선교 사역에 동참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처음 부터 지금까지’라고 칭찬함으로써 빌립보교회의 자존심을 세워준다.
여기에서 복음전하는 일과 ‘동참’ 하는 것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달라질 수 있다. 동참이라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인지,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것인지 약간의 이해의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동참이라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가 친밀하고 깊은 관계성을 맺는 것이라는 해석에 손을 든다면, 5-6절은 복음 안에서 친밀하고 깊은 관계석을 맺도록 ‘시작’ 하신 분께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예수의 날에 그 일을 ‘완성’하시는 [끝맺음]까지 선한 일을 지속하신다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칼빈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성화의 ‘착한 일’이 복음을 들음과 성령께서 조명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의와 거룩함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동참’이라고 번역된 코이노니아를 복음 안에서의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7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내가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변호하고 입증할 때에, 내가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매우 강력한 어조로 자신이 빌립보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리워했는지 말한다. 변호, 입증, 증언 등의 단어는 마치 바울이 법정에 서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처럼 빌립보 사람들에게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증명해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다시 빌립보 사람들이 바울이 받은 은혜에 동참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코이노니아’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이로써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간의 친밀하고 깊은 유대감이 강조되고 있고, 이 은혜에 하나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친밀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9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더 풍성하게 되어서,
10 여러분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
다시금 기도에대한 표현으로 돌아온다. 사실 3절부터 11절까지가 긴 내용의 기도일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의 기도는 빌립보교회와의 친밀하고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서 함께 동역하며 달려갈 싸움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마침내 이루실 그 이야기, 곧- 지식과 모든 통찰력과 풍성함, 가장 좋은 것을 분별함, 순결하고 흠이 없음, 가득찬 의의 열매-가 사랑 안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될 것을 바라고 소망하며 ‘기도’ 한다.
우리는 바울의 기도가 ‘총체적’인 것을 포함하는 네 번의 ‘모든’에서 강조되고 있다는 점을 살펴봤다. 그리고 이 총체적인 기도는 빌립보교회를 향한 친밀하고 깊은 관계성 맺기인 코이노니아로 표현되었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이 하나 됨은 하나님의 ‘선한 일’로써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의의 열매로 맺혀지게 될 것이다.
바울의 이 친밀하고 따뜻한 인사와 총체적인 기도를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의 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는데 굉장한 열심을 내지만, 심장을 공유할만한 따뜻하고 친밀한 교제가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주님의 착하신 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되는 일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분명 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함께 친밀하고 깊은 교제가 이뤄지는 코이노니아가 회복되기를, 그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 올 때까지 우리안에 친밀한 코이노니아의 풍성한 열매들이 맺히게 해주시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기도는 시간과 공간, 감정과 기억, 공동체와 개인 모든 것이 얽힌 ‘총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2.
성도의 교제는 피상적일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공유하는 친밀하고 밀접한 하나됨을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
3.
성도의 깊고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는 것은 결국 그 일을 먼저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가능해진다.
4.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마치는 날이 오기 까지 이 풍성한 교제와 의의 열매가 맺히길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