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주님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을 보니, 정말 고집이 센 백성이구나.
14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하늘 아래에서 그들의 이름을 없애버리겠다. 그 대신에 내가 그들보다 강한 많은 민족을 너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15 내가 발길을 돌려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타고 있었고, 나는 두 손으로 두 언약 돌판을 들고 있었습니다.
16 그 때에 내가 보니,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죄를 짓고, 당신들이 섬길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명한 길에서 이미 떠나 있었습니다.
17 그래서 내가,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두 돌판을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내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맹렬히 분노하신다. 그들이 시내산, 약속이 선포되는 자리,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반역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겁도 없이 하나님 바로 앞에서 배신을 저질렀다.
이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분노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약을 파기시키시려는 것으로 이어진다. 계약 파기는 두 가지 표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모세를 향해서 ‘내가 많은 민족을 너에게서 나오게 하겠다’ 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을 떠올리게 만든다.
또 하나는 돌 판을 내 던져 깨뜨려 버린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계약의 파기를 의미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배신자들에게조차 신실하신가? 그들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끌어안으시는가?
본문의 표현만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고 배신하는 자들에게조차 구원의 약속에 신실하게 행동하실 정도로 물렁한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지위를 박탈시키시고 계약을 파기하실 마음을 가지신다.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밤낮 사십 일을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주님 앞에 엎드려 있어야만 한 것은, 당신들이 주님 보시기에 나쁜 일을 저질러서 그를 노엽게 하는 온갖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19 주님께서 당신들을 두 고 크게 분노하셔서 당신들을 죽이려고 하셨으므로, 나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나의 애원을 들어주셨습니다.
20 주님께서 아론에게도 몹시 분노하셔서 그를 죽이려고 하셨으므로, 그 때에도 나는 아론을 살려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21 당신들이 지은 죄 곧 당신들이 만든 그 금송아지를 불에 넣어 녹여서 산산이 부수고, 먼지 같은 가루로 만들어서,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물에 띄워 보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런 무서운 결정에 바짝 엎드린다. 하나님의 커다란 분노는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일반 백성들과 대제사장 아론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에서 모세는 훌륭한 중보자 역할을 감당한다. 모세가 보여주는 중보자의 역할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아론과 하나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종보자 역할을 감당한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
22 당신들은 다베라와 맛사와 기브롯핫다아와에서도 주님을 노엽게 하였습니다.
23 주님께서 당신들을 가데스바네아로 보내실 때에, 당신들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차지하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를 믿지 않고 그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용서를 가볍게 여기기라도하는듯이 또 다시 반역을 계속한다. 그들은 다베라, 맛사, 기브롯핫다와에서 하나님을 진노케 했다. 이름의 뜻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시험과 심판에 대한 이미지를 분명하게 만든다. 다베라는 ‘불태움’, 맛사는 ‘시험’, 기브롯 한다아와는 ‘팀욕의 무덤’이라는 뜻이다.
이어지는 구절은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반역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새로운 리더를 뽑아 이스라엘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약속의 땅을 얻을 자격이 없었고, 이 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도 배반하는 자들이다.
24 내가 당신들을 알게 된 날부터 지금까지, 당신들은 주님을 거역하기만 하였습니다.
25 그 때에 주님께서 당신들을 멸하시겠다고 하셨으므로, 나는 주님 앞에 여전히 밤낮 사십 일을 엎드려 있으면서,
26 주님께 기도하여 아뢰었습니다.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이 백성을 강한 손으로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주님의 그 크신 힘으로 속량하셨으니,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오.
27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셔서라도, 이 백성의 고집과 악과 죄를 보지 말아 주십시오.
모세의 말처럼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반역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정당했고, 배신하는 민족은 하나님의 손에 끊어져도 할 말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주의깊게 생각해볼 것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가 과연 필요했는가 하는 점이다. 하나님은 모세와의 상의 없이, 동의 없이 일을 진행하실 수 있다. 그렇게 하실 능력도, 권한도 가지신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노를 ‘표현’하시고, 모세의 중보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는 모세의 기도에서 두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셔야 함을 설득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중 첫 번째는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변개치 않으시고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시다.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신다면 이스라엘을 포기하시면 안된다.
28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주님께서 아직 우리를 이끌어 내지 않으셨을 때에 우리가 살던 그 땅의 백성이 말하기를,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능력이 없다 하거나, 그들의 주가 자기 백성을 미워하셔서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이끌어 내셨다 할까 두렵습니다.
29 이 백성은 주님께서 그 크신 힘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님의 소유요 주님의 백성입니다.’ ”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명예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이스라엘을 내버리신다면 하나님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꼴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명예롭고 존귀하신 이름에따라 이스라엘을 끝까지 구원하시는 일을 멈추시면 안된다. 이스라엘은 형편없는 배신자들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명예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명예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며 그 명예에 합당하게 일하신다.
물론, 우리는 이 설명이 철저히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호소에 사용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는 그런 설명들이 필요치 않으시다. 그저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따라서 일하셔도 온 세계의 창조자이시자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문제가 될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금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구원을 완성해가신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리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의 존엄하신 얼굴 앞에 설 자격이 없는 배신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며 그분의 명예로움을 드러내셨다. 그 약속과 명예의 자리가 가장 비참한 장소 ‘십자가’다. 십자가가 우리 구원에 가장 강력한 사랑의 약속을 인증하신 장소이며, 가장 비참하신 그 자리를 영광스러운 부활로 바꾸심으로써 그분의 명예를 드높이셨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사랑’ 때문에 일어났음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사랑이 이 일을 하신 근본적인 이유다. 그 사랑을 입은 자들이 바로 문제많은 우리다.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께 우리의 삶을, 사랑을 드리길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1.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계약과 약속을 계속해서 배반했다.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분노를 얻기 충분했다.
2.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약속과 명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길 기도했다.
3.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고 일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분노를 표출하시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그분이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근본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4.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의 구원 또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증거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사랑의 약속과 영광스러운 일하심을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