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것은 오바댜가 받은 계시이다. 주 하나님이 에돔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주님께서 여러 민족에게 천사를 보내시면서 “너희는 일어나라. 에돔을 쳐부수러 가자!” 하신 말씀을 우리가 들었다.
우리는 오바댜가 어떤 인물인지에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오바댜의 이름 자체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을 가졌다는데서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써 말씀을 대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바댜의 주요 메시지 대상은 ‘에돔’이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여러민족’에게 천사를 보내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심판 메시지의 대상은 에돔이지만, 모든 열방이 ‘메시지’를 듣고 반응해야 하는 대상이다.
지금 에돔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처부숴지듯이, 여러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을 때 처하게 될 결말은 ‘쳐부숨’ 당함이 될 것이다. 현재 들어야 하는 대상은 에돔이지만 실재적으로는 모든 민족이 들어야 할 경고이다.
2 “나는 여러 민족 가운데서 너를 가장 보잘것없이 만들겠다. 모든 사람이 너를 경멸할 것이다.
3 네가 바위 틈에 둥지를 틀고, 높은 곳에 집을 지어 놓고는, ‘누가 나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으랴’ 하고 마음 속으로 말하지만, 너의 교만이 너를 속이고 있다.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꾸민다 하여도, 네가 별들 사이에 둥지를 튼다 하여도, 내가 너를 거기에서 끌어내리고야 말겠다. 나 주의 말이다.”
에돔은 교만한 존재로 묘사된다. 에돔은 천혜의 요새와 같은 산 위에 세워진 도시들을 가졌다. 난공불락의 요충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위 틈에 둥지를 틀고 높은 곳에 집을 지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교만이었다. 실재로 나바테아 왕국에 의해서 기원전 312년 경에 에돔은 완전히 멸망한다.
그들의 교만은 ‘독수리처럼 높은 곳’ ‘별들 사이에’ 보금자리와 둥지를 틀었기 때문에 함부로 쳐들어 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수리는 고대 세계에서 강력한 신적인 상징이었다. 별들 사이에 세워진 왕좌에 대한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다시말해 에돔의 교만은 자신들의 존재가 ‘신적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까지 나아간다는 것이다.
바빌론 왕이 계명성으로 묘사되며 땅 끝까지 떨어져 낮아지게 되리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떠올려볼 수 있다. 바벨론 왕 또한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 신들이 모여 있는 산 위에 자리 잡고 앉겠다고 공언했었다. 하지만 바벨론 왕은 하나님에 의해 스올, 땅 밑 구덩이, 맨 밑바닥으로 떨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에돔은 바벨론 같은 교만함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결말도 똑같을 것이다.
5 “너에게 도둑 떼가 들거나 밤중에 강도 떼가 들이닥쳐도, 자기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빼앗아 간다. 포도를 털어가는 사람들이 들이닥쳐도, 포도송이 얼마쯤은 남겨 놓는다.
6 그런데 에서야, 너는 어찌 그처럼 샅샅이 털렸느냐? 네가 깊이 숨겨 둔 보물마저 다 빼앗기고 말았다.
7 너와 동맹을 맺은 모든 나라가 너를 나라 밖으로 쫓아내고, 너와 평화조약을 맺은 나라들이 너를 속이고 너를 정복하였다. 너와 한 밥상에서 먹던 동맹국이 너의 발 앞에 올가미를 놓았다. 너의 지혜가 어디에 있느냐?
두 가지의 예시, 도둑 떼와 포도를 털어가는 사람들이 가정하는 것은 ‘얼마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다. 완전히 모든 것을 통째로 빼앗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서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에는 경제적인 것, 동맹을 맺은 정치적인 것이 지혜와 결합되어 있는데, 그 지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우리는 잠언에서 계시가 없을 때 백성이 방자해짐으로 의인이 그들이 망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말씀을 읽을 수 있다. 그들 속에 참된 지혜를 모조리 빼앗기고 사라져버릴 때 그들의 패망은 확정적이게 된다.
8 나 주가 말한다. 그 날에는 내가 에돔에서 슬기로운 사람을 다 없애고, 에서의 방방곡곡에 지혜있는 사람을 남겨 두지 않겠다.
9 데만아, 너의 용사들이 기가 꺾이고, 에서의 온 땅에 군인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다 칼에 쓰러질 것이다.”
에돔은 왕의 길이라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핵심적인 무역통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요함을 통해 상당한 지혜를 자랑할 수 있었다. 욥기에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등장하며 그의 지혜를 들을 수 있게 되는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빼앗기는 에돔의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빼앗김은 ‘지혜’임이 더욱 강조된다. 슬기와 지혜가 사라지면서 [용사들]조차 사라질 것이다. 군사를 사용할 전략 자체가 사라지면서 그들이 자랑하는 난공불락의 요새마저도 허무하게 굴복당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라는 잠언의 말씀을 떠올려볼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처럼 낮아진자를 높이시며 높아진 자들을 낮추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깊이 묵상해봐야한다. 우리의 교만은 스스로를 속여서 ‘나는 괜찮다’라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킬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괜찮음’은 모조리 ‘교만’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복종하는 것만이 겸손으로 나아가는 시작이다. 치장되고 위장된 겸손과 지혜는 모조리 빼앗길 것이다. 오로지 남는 것은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선택해야하는 것은 참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다. 겸손의 왕이신 분이 걸어가신 가장 낮아지는 십자가의 길이다. 그곳에서만 우리가 놓여진 위치와 자리가 참된 의미를 찾게 된다.
오늘 그 겸손의 마음을 붙들며 살기를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