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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반대와 긍정의 나뉨 / 마가복음 3:1–19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안식일에 음식을 먹는 문제로 논쟁을 겪으신 후에 ‘회당’으로 들어가신다. 우리는 1장에서 이미 회당에서 귀신들린자를 물리치신 장면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있다. 우리는 그곳에서도 회당에 부정한 자가 있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었다. 동일하게 적용해보자면 본문에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제대로된 일을 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온 사람들의 태도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있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순응하지 못한다. 그들의 율법의 기능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의 법으로는 아픈자를 고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시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셨듯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그분이 제공하시는 안식은 원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일침을 가하신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안식의 목적임을 다시 밝히신다. 예수님은 ‘분노’하신다. 지금의 이 질병과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이전의 나병환자를 고치실 때도 동일한 반응을 보이신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겠다. 마음이 굳어진 자들을 향한 탄식과 함께 손 마른 자를 고치신다. 이로써 점점 더 예수님을 향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닷가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많은 사람이 따라왔다. 또한 유대와
8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그리고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가 하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듣고, 그에게로 몰려왔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함께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했다고 말한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관심사가 다른 집단이었을 것임에도 예수님을 향한 적대감으로 하나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바닷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다. 예수님을 향한 반응의 갈라짐과 동시에 예수님을 향한 환호가 이어진다. 흥미로운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오는 지리적인 확장과 오늘 본문 8절이 보여주는 지리적인 확장이다. 예수님의 사역의 확장은 이미 이방인들을 향하여 뻗어나가고 있었다. 온 천지만물의 주인이신분의 다스리심은 결코 좁은 지역에 제한될 수 없다.
9 예수께서는 무리가 자기에게 밀려드는 혼잡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게 하셨다.
10 그가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으므로,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악한 귀신들은 예수를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서 외쳤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12 그러면 예수께서는 “나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아라” 하고, 그들을 엄하게 꾸짖으셨다.
온갖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밀려드는 장면은 그들의 모든 부정함들이 예수님께 옮겨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분명 그분은 그 일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아니다. 그리고 아직 그분의 때가 되지 않았다. 그 때가 이를 때까지 예수님은 혼잡을 피하시기 위해 배를 띄워 분리되신다.
악한 귀신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려고한다. 악의 존재들은 예수님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고있다. 예수님은 악한 영들에게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으셨다. 이 꾸짖으심의 목적이 ‘악의 영들에 의해 드러내짐을 막으시는 것’과 ‘메시아적 비밀’인 앞으로의 사역을 방해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시려는 목적이라는 점을 이미 지적했었다.
13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셔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예수께로 나아왔다.
14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15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산에서 사람들을 ‘부르심’과 그들에게 ‘말씀을 전파’ 하게 만드시는 과정이 마치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계명을 전하게 하신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이 장면은 새로운 시내산에서 새로운 모세의 사역, 새로운 출애굽으로의 열둘을 생각나게 만든다.
출애굽의 목적이 애굽에서 ‘나온’ 것만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 로써의 역할이 강조되었던것과 비교해보면, 제자들의 역할은 그들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악에서 ‘나오게’ 만들며 참된 왕이요 주인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다스림과 통치를 선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16 [예수께서 열둘을 임명하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시몬과,
17 ‘천둥의 아들’ 을 뜻하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여 주신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18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와 열혈당원 시몬과,
19 예수를 넘겨준 가룟 유다이다.
주요 제자들에대한 간략한 소개들을 읽을 수 있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는 것과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 예수님을 넘겨준 가룟 유다의 존재 등이다. 우리는 이 이름들 속에서 무한한 긍정만을 발견하지 못한다. 배신자도 있고, 아마도 성격적으로 급하고 불같았을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와 요한이 있으며 세리 였던 마태와 열심당원인 시몬은 전혀 다른 정치색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도마의 죽기까지 각오하다가도 부활 경험 직전까지 의심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들은 이 시점에 한정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기로 한다.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오로지 ‘복음’이다. 지금 이스라엘 안에서 이 ‘복음’에 대한 반대를 보여주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이 복음에 완전히 헌신하려는 자들이 등장한다. 이 갈라진 반응들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도 이 갈라진 반응 속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복음에 온전히 헌신하며 우리 주님이 다스리시는 치유와 회복, 은혜와 사랑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