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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부활을 향해 달리기 | 빌립보서 3:12–21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몸을 내밀면서,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이 아주 세심하게, 이 구원이 ‘나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잇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으로 획득하는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되어 선물처럼 얻어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완전히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달리기’에 대한 비유를 말한다. 당시의 도시에서 분명히 마라톤과 달리기 경기는 잘 알려진 엔터테인먼트 였다. 모든 빌립보교인들은 이 경기를 떠올리면서 이 예화를 듣고 있을 것이다.
승리의 면류관을 쟁취하기 위해서 달리는 사람은 결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목표지점을 향해서 전심전력해서 달려갈 뿐이다. 사도 바울은 오로지 이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밀면서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또 다시 어떤 면류관을 얻기 위해, 차등이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경쟁적인 경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바울의 의도는 3장 시작에서 말한 것처럼 ‘육신의 자랑’할 것들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화의 의도를 곡해해서는 안된다. 내가 달려가서 면류관을 쟁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골인의 지점이 앞에 있지 뒤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골인 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시작의 지점은 율법이었다. 율법은 우리가 되돌아가야할 골인지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부활을 향해서 달려가야 한다.
아직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붙들어야 할 어떤 대상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남은 경주가 있다는 것이다. 경주는 골인 지점을 통과했을 때 끝난다. 부활은 죽음 너머에 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김으로 이 경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여러분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16 어쨌든, 우리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든지 그 단계에 맞추어서 행합시다.
구원에 단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숙하지 못한 단계, 성숙한 단계가 나뉘어 있고, 그 단계에 맞춘 행동 양식이 있다는 말일까? 우리가 앞선 3장의 초반에 다뤄지는 내용들이 유대인의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와 온전히 하나된 코이노니아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바울의 비판이 담겨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여기에서 ‘성숙한 사람’ 또는 ‘온전한 자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즉, 이 부분에서 바울은 ‘역설적’ 표현을 통해서 이들이 스스로 ‘높아진 자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달리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높아지기 보다, 남보다 낮게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어떤 단계에 맞추어 행하라는 말로 들리는 ‘단계에 맞추어 행하라’는 번역은 적절하지 않아보인다. 오히려 [똑같이 행동하라]고 번역하는것이 옳다. 그것이 전체적인 맥락에 맞추어 보아도 옳다. 신앙적 수준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수준, 어떤 상황에 놓였든지, 마치 로마 군인들의 방패 진영인 테스투도 처럼 ‘하나 됨’으로, 참된 코이노니아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똑같이 행동하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
17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19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바울은 담대하게 ‘나를’ 본받으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를 본받아 사는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이것은 하나의 연결고리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땅에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분을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하심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은 선명하게 다른 삶과 구별이 되는데 십자가의 원수들이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배를 하나님으로 섬긴다’. 즉 자기의 욕망을 최고의 위치에 두고 욕망에 충실해 사는 것이다. 또한 죄를 수치로 여기지 않고 영광으로 삼는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에만 주목한다. 이런 삶은 하나님과 동등된 삶을 살아가려는 아담의 본을 받아 사는 사람들, 스스로의 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간절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그런 삶에서 빠져나오라고 권면한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죽기까지 복종하며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겉으로는 욕망에 반하며, 이 땅의 가치에서는 오히려 수치처럼 여겨지며, 가난과 비참과 어려움을 야기하는 삶처럼 보이지만, 그로써 얻는 것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의' 부활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있을 수가 없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가 작은 로마로써 엄청난 혜택을 누리던 도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팍스 로마나의 영광 속에 살아가는 혜택과 풍요로움을 알고 있는 빌립보교회에게 우리의 진정한 시민권은 로마의 시민권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큰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하늘의 시민권은 로마 황제가 복종시킬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어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들이 얻는 것이다. 하늘의 시민권은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 부활의 몸과 같이 되는 특권을 가졌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의로움이나, 세속의 시민권보다 비교할 수 없는 영광과 권세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하늘의 시민권이다.
우리가 달려갈 최종적 부활의 상태, 그리고 하늘의 시민권에 대한 영원한 결과는 경주를 마친 후에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며 경주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은 분명히 효력있게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계신다. 우리의 삶이 고통과 아픔에 놓였더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여전히 임하고 있음을 고백해야하고 고백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수고와 노력들을 마지막 심판대 위에서 갚아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활’이라는 확고하고 분명한 가치로 인해 우리의 기쁨은 어떤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울이 깨달은 진정한 만족의 비밀이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참으로 헛되다. 이 놀라운 부활의 영광을 참되게 소유하길 바라고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우리는 부활이라는 분명하고 선명한 골인 지점을 향해서 최선을 다해 달리는 중이다.
2.
이전의 출발점을 바라보지 말고 결승점을 바라보면서 예수 그리스도 닮기를 전력으로 바라며 행해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 곧 우리 안에 나타나시는 우리 주님의 영광이며 곧 부활의 영광이다.
4.
우리의 시민권의 특권은 세상의 어떤 특권과 비교할 수 없다. 그 특권이 바로 ‘부활’이다.
5.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