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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법의 목적 / 신명기 23:19–24:9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9 당신들은 동족에게 꾸어 주었거든 이자는 받지 마십시오. 돈이든지 곡식이든지, 이자가 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라도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됩니다.
20 외국 사람에게는 꾸어 주고서 이자를 받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동족에게서는 이자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야만 당신들이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당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주변국가에서는 이자를 매우 높은 이율로 부과했다. 그에 대비해서 오늘의 율법은 그 이자를 아예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개인의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는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이 의로움의 표식이었고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 도덕적, 사회적으로 죄악시되었다.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에서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생기는 다양한 시스템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올 것이다. 중세까지만하더라도 이자를 부여하는 것이 불법이고 도덕적으로 악하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인문학자들과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이자의 합법성을 면밀하게 연구해 인정했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는데 걸림돌을 치워내는 역할을 했다. 현대에 이자 문제를 ‘도덕적 문제’ 라고 취급한다면 시장경제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고 볼 것이다. 그만큼 이자와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문제는 사회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따라서 이전의 방식으로 이자를 ‘죄악시’ 하는 관점은 지지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 윤리에서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와 수단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답을 줄 수 있느냐는 점에서 여전히 연구의 과제로 남을 수 있다.
21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맹세하여서 서원한 것은 미루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당신들에게 요구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미루는 것은 당신들에게 죄가 됩니다.
22 맹세하지 않은 것은 당신들에게 죄가 되지 않습니다.
23 그러나 한 번 당신들의 입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입으로 스스로 약속한 것은 서원한 대로 하여야 합니다.
서원은 스스로, 자발적인 하나님과의 약속을 맺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단 하나님께 서원한 이상 그 내용에 대해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잠언은 성급하게 서원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만큼 서원으로 이루어진 ‘약속’의 무게는 중대했다.
기본적으로 ‘약속’에 대한 성경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해야 한다. 더불어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은 이스라엘은 ‘약속’ 자체에 신실해야 한다. 꺼내진 말에 진실함을 담지 않고 약속을 쉽게 어기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직 신실하게 약속에 반응하는 것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반향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24 당신들이 이웃 사람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먹을 만큼 실컷 따먹는 것은 괜찮지만, 그릇에 담아가면 안 됩니다.
25 당신들이 이웃 사람의 곡식밭에 들어가 이삭을 손으로 잘라서 먹는 것은 괜찮지만, 이웃의 곡식에 낫을 대면 안 됩니다.”
이웃의 포도원에서 실컷 배부를 만큼 포도를 먹는 것이나 곡식밭에서 이삭을 손으로 잘라먹는 것 자체가 ‘도둑질’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러나 성경은 이 기준을 ‘모호하게’ 가져가기보다 차라리 그릇이나 낫 같은 도구를 명시함으로써 ‘환대’를 실행하길 권면한다. 배고픈 여행자에게 환대를 베풀고 아까운 마음이 아니라 섬기는 마음으로 나누어줄 때, 하나님의 베풀어주심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음식을 먹는 입장에서 그 환대와 호의를 오용해 절도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이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속이 단단하게 맺어져 있는 상태여야하고 성숙함과 ‘약속’에 대한 진실함이 수반될 때만 가능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 신실하고 이웃에게 신실할 때, 어려운 이웃들도 함께 살아갈 힘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1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2 그 여자가 그의 집을 떠나가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3 그 둘째 남편도 그 여자를 싫어하여 이혼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그 여자와 결혼한 둘째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4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으므로, 그를 내보낸 첫 번째 남편은 그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 앞에서 역겨운 일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을 죄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다루신 적이 있고 그 의도를 밝히셨기 때문에 그 부분을 참고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1절은 ‘수치스러운 이혼’의 이유를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치스러운 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완악함’으로 인해서 이혼을 허용해주셨다고 말한다. 이 완악함은 ‘남성’에게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다시 이혼했거나 과부가 되면 그 여자와 재혼해서는 안되는데 이것은 불행한 여인이 무책임한 남자들이 서로에게 패스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든 법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라는 분명히 한다. 예수님도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에 대해서 ‘간음’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따라서 이혼 법률은 이혼을 쉽게하려는 법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도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지적하셨다고 볼 수 있다.
5 “아내를 맞은 새신랑을 군대에 내보내서는 안 되고, 어떤 의무도 그에게 지워서는 안 됩니다. 그는 한 해 동안 자유롭게 집에 있으면서, 결혼한 아내를 기쁘게 해주어야 합니다.
6 맷돌은, 전부나 그 위짝 하나라도, 저당을 잡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저당잡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7 어떤 사람이 같은 겨레인 이스라엘 사람을 유괴하여 노예로 부리거나 판 것이 드러나거든, 그 유괴한 사람은 죽여야 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 가운데서 그러한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아내를 맞은 새신랑이 군대에 가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결혼한 아내를 기쁘게 해줌으로써 ‘가족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대를 이어서 언약적 가정이 유지되도록하는 사회적 약속을 기반으로 할 것이다.
맺돌에 대한 법률은 ‘저당 잡힌 것’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빚을 지고, 그 빚에 대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서 생기는 생계 수단의 압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맺돌은 일용할 양식을 빻는 가정용 방앗간으로 이것을 저당 잡히면 가난하고 궁핍한 가정이 생존할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생명을 저당잡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된다.
‘유괴’는 단지 도둑질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는 일이므로 살인과 마찬가지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유괴되어 노예로써 외국에 팔릴 경우에는 약속의 땅에서 배제되어 언약 백성으로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만큼 심각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율법의 기초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8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에 대하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당신들에게 가르쳐 주는 대로, 모든 것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지키십시오.
9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길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미리암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십시오.
악성 피부병은 단지 한센씨 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부에 생기는 모든 종류의 전염성 피부질환을 가르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악성 피부병에 대한 조사와 법의 집행은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건강에 보이는 관심이 육체적 건강으로 확대된다.
우리는 계속해서 다양한 법률들을 살펴보고 있다. 그 법률들은 언제나 약자들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성경 율법의 기초가 공동체를 유지시키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 삶의 가치가 어떠한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공동체의 순수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늘 고민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어떤 환대와 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지 질문해봐야한다. 그 환대와 보호 속에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이 우리 사회, 교회 안에서 이뤄지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