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이스라엘 백성아, 너희의 하나님과 같은 신은 달리 없다. 하나님이 너희를 도우시려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시고 위엄 있게 오신다.
27 옛부터 하나님은 너희의 피난처가 되시고, 그 영원한 팔로 너희를 떠받쳐 주신다. 너희가 진격할 때에 너희의 원수를 쫓아내시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신다.
28 곡식과 포도주가 가득한 이 땅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흠뻑 젖는 이 땅에서, 이스라엘이 평화를 누린다. 야곱의 자손이 안전하게 산다.
29 이스라엘아, 너희는 복을 받았다. 주님께 구원을 받은 백성 가운데서 어느 누가 또 너희와 같겠느냐? 그분은 너희의 방패이시요, 너희를 돕는 분이시며, 너희의 영광스런 칼이시다. 너희의 원수가 너희 앞에 와서 자비를 간구하나, 너희는 그들의 등을 짓밟는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다고 재차 강조된다. 이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위엄있게 오시는데, 당시 고대 근동에서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은 ‘바알’로 알려져있었다. 따라서 이 본문에서 ‘다른 신 없다’라는 설명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구름을 다신다’라는 설명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구름을 타는 신이 누구인지를 물어보면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분께서 모든 전쟁의 승리자이시며 피난처요 승리자시며 용사시다. 그분께서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풍요롭게 하시며 안전하게 하신다. 그분 뒤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온전한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민족이야 말로 참된 복을 얻은 민족이다. 이스라엘은 그 복을 받았다. 대신 싸워주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정복 전쟁의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1 모세가 모압 평원, 여리고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의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니, 주님께서는 그에게, 단까지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땅을 보여 주셨다.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 온 유다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에서 소알까지 평지를 보여 주셨다.
4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이다. 내가 너에게 이 땅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네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모세는 여리고 맞은쪽 느보 산으로 올라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에 올랐을 것이다. 그곳에서 보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단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쪽으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리 영역을 보여주신다. 이 모든 영역을 실재로 보았을것으로 이해되지는 않지만, 모세가 눈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지경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임은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하나의 ‘지도’를 머리속에 그리게 됨으로써 그 전체를 보여주신 하나님의 넓으신 땅을 놀라운 광경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시는 은혜를 공유하게 된다. 이제 모세에게 허락된 시간은 끝났다. 모세는 그 영광스럽고 복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한다. 이제 이야기는 리더십이 이양된 여호수아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세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로 신명기는 마무리 될 것이다. 이런 모세의 유일함과 탁월함이, 다시 새로운 모세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들 것이고, 여호수아가 성공적인 정복, 그러나 불완전한 정착을 이룸으로 모세의 우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이긴 새로운 모세’, 새로운 ‘여호수아=곧 예수’ 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극복된다는 성경의 큰 그림으로 확인될 것이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서,
6 모압 땅 벳브올 맞은쪽에 있는 골짜기에 묻혔는데, 오늘날까지 그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7 모세가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그의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기력은 정정하였다.
8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평원에서 모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세를 생각하며 삼십 일 동안 애곡하였다.
모세는 죽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영웅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소라 본문은 여호와께서 그를 묻으셨다라고 되어 있다. 티게이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무덤을 비밀로 유지하시기 위해서 모든 이들이 죽으러갓다고 알고 있는 그 산에서 시신을 옮기셨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지점이 한편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죽음을 기리지도 못하는 형태로 비극적 결말을 맺는가 질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벳브올’이라는 지명이 하나님을 배신했던 ‘바알브올’을 떠올리게 만들고 바알브올의 실패와 다르게 그 우상숭배의 지명에도 여전히 믿음을 굳게 지키며 죽음을 맞이한 모세를 통해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 예시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는데 방점이 아니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방점이 찍힌다면 이런 모세의 죽음 기록조차 이스라엘의 영적인 삶과 죽음의 메시지로 읽혀질 수 있다. 모세의 죽음은 눈에서 빛을 잃지 않고 기력이 정정했다고 쓴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한계’에 복종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새로운 모세이신 예수님도 마지막 순간 크게 소리지르실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으셨지만, 자기의 숨을 내어주심으로 죽으셨다. 둘 모두 하나님께 대한 목숨을 다한 철저한 복종이라는 점을 공유한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쳤다.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잘 듣고 그를 따랐다.
10 그 뒤에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고 모세와 말씀하셨다.
11 주님께서는 그를 이집트의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보내셔서, 놀라운 기적과 기이한 일을 하게 하셨다.
12 온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앞에서, 모세가 한 것처럼, 큰 권능을 보이면서 놀라운 일을 한 사람은 다시 없다.
계속 지적해온것처럼 모세와 같은 다른 선지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우월성과 탁월함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를 통해 정복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모세의 안수로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영이 넘치게 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가실 것이다. 계속해서 여호수아는 모세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위대한 신앙영웅의 끝은 이어받은 리더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리더 또한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참된 리더이심을 고백할 때 그 여정 또한 순탄할 것이다. 여호수아는 훌륭히 그 점을 보여줄 것이다.
우리는 신명기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할 때 얻는 풍성한 은혜와 그에 합당하지 않게 행동할 때 경험하게될 끔찍한 종말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알았던 모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조차 담담히 복종한다. 그것이 은혜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충분한 것임을 실재로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목숨을 다한 사랑은 원대한 인간적 꿈조차 내려놓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 순종을 통해 ‘무덤’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통해 더 놀라운 비전 ‘부활’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도 목숨을 다한 사랑을 드릴 때 우리의 무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를 일으키시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경험될 것이다. 이 참된 소망을 잊지 않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