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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늘에서 땅으로 | 사도행전 1:1–11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데오빌로님, 나는 첫 번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2 거기에 나는,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시작에도 데오빌로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께 소중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합성어다. 이런 데오빌로는 가상적 이름이지만 그를 부르는 존칭인 ‘각하’, 크라티스테는 아마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부유한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힌트일 것이다. 그리고 데오빌로를 통해서 누가가 후원을 받았고 이 책을 쓸 수 있는 연구과 출판의 재정적 도움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첫번 째 책, 그러니까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다고 저술 목적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부활 이후의 예수님의 나타나심과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사도행전에서 다시 짧게 언급되면서 두 책은 자연스럽게 연결될 것이다.
3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4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잡수실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가장 핵심적으로 가르치신 내용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 이었다. 이것을 위해 여러차례 나타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확실한 부활을 여러차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경험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을 일시적인 환각 현상이라고 치부해버린다면 이렇게 긴 시간동안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시 다발적이고 선명하게 나타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죽지 않으셨던 것은 아닐까 질문할 수 있겠지만,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확인된 죽음에서 ‘기절’ 가능성을 찾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수님의 놀라운 죽음의 정복,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은 다만 멀리 미래에서 다가오고 있는 종말 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재에 실재하는 나라로써의 하나님 나라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하나님 나라를 직접 죽음권세를 이기시고 가져오셔서 보여주시는 분이 눈 앞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복음 마지막에서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을 받는 다는 것을 참고해볼 수 있다.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이 곧 성령이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로부터 입혀지는 능력은 하나님의 실재적인 통치를 보여줄 것이며 하나님께서 현재 다스리고 계시다는 증거로 인해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서 오는 것으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현재에도 경험될 수 있다.
세례는 정결의식으로써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은 ‘씻겨짐’의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인해 세례는 더 큰 성경적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는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 이다. 물 속은 ‘죽음’을 상징했고, 그 죽음으로 깊이 내려갔다가 일으켜짐으로 다시 살아나 정결하게 된 새로운 인생을 표현하게 되었다. 여기에 ‘성령’의 임재로 말미암아 전혀 새로워진 거듭난 삶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성령 세례는 다시 살아난 삶의 보증이 되었다. 따라서 성령 세례는 ‘거듭난 신자’의 삶에서 확인 된다.
6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제자들의 질문은 전혀 번지수를 잘못잡고 있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준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마지막 입성 전까지도 계속해서 ‘군사적 왕’, ‘세속적 통치자’ 로써의 메시아 그림을 결코 놓치지 않았었다. 심지어 오늘의 본문도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를 질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부활 이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시각을 바꾸라고 가르치신다. 그 때와 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다.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 때와 시를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버지께 절대적으로 순종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제자들이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시공을 창조하시고 관리하시는 분께서 마지막을 지정하시는 것도 오롯이 아버지의 권한이시다. 우리는 다만 복종할 뿐이다. 그러나 그 복종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가 온전하고 선명하게 경험될 것이 약속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8절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에 대한 축약이라고 볼 수 있다. 성령님의 임재와 증인이 된 사도들의 행진은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확장될 것이다. 사도행전의 구조가 누가복음과 비슷하리라는 점을 예상해본다면, 예수님의 탄생과 성령님의 임재가 연결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바울의 재판 사건이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유대인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린 것처럼, 사도행전의 마지막에서 세상의 중심으로 알려졌던 ‘로마’에서 약속하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가르치는 것으로 마치게 될 것이다. 땅 끝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서 계속해서 확장해 나간다.
9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10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구름을 타고 올라가시는 ‘인자’의 그림은 다니엘 7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구약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로 구름이 자주 사용된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다. 즉,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를 가졌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인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영광스러운 승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증언’ 한다. 이것은 또 다른 방식의 증인 역할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두 세사람’이 증인의 최소 요구 숫자다. 흰 옷 입은 두 사람은 증인으로써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최초의 증인이자 교사이다. 이제 이 가르침이 ‘하늘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어졌고, 제자들은 ‘하늘’을 향한 시선에서 내려와 약속하신 성령을 힘입어 ‘세상’을 향해 증인이 되고 교사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성령님의 임재에 대한 강조와 반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말하자면 ‘영적 세계’에서 벌어질 일로 이야기 되지 않고, 구름을 쳐다보는 제자들을 향해 마치 꾸짖듯이 ‘땅’으로 내려오라고 요구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증인과 교사다. 우리의 역할을 잊어버리는 이유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임재를 경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하나님 나라, 우리 주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경험하길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 나라가 경험되고 있다면, 기꺼이 그 나라를 소개하고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자. 그랬을 때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권능’이 충만히 경험될 줄 믿는다. 그 은혜를 사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