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우신 것과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한 사람이 바로 이 모세입니다.
38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회중으로 모여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서, 산 말씀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39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를 제쳐놓고서 이집트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습니다.
40 그래서 그들은 아론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시오. 이집트 땅에서 우리를 이끌어 내온 그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37절은 신명기 18장 15절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신 것 처럼 ‘한 예언자’를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 물론 지금 모세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본것처럼 아브라함도, 요셉도 그 예언자에 속할 것이다. 동족 가운데 한 예언자가 세워지지만 그들은 언제나 배척당한다. 37절이 말하는 다른 한 예언자도 이러한 배척을 받을 것을 예상하게 만들어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모세도 조상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가장 심각한 반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적으로 선언되고 있는 시내산 앞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이었다.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던 이들은 모세가 아직 시내산에 살아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시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전혀 모르겟다고 말하는 이들과 마찬가지 반응으로 보였을 것이다.
41 그 때에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그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두고 즐거워하였습니다.
4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그들을 내버려 두셔서,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책에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가문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있을 때에, 희생물과 제물을 내게 바친 일이 있었느냐?
43 너희는 몰렉 신의 장막과 레판 신의 별을 받들었다. 그것들은 너희가 경배하려고 만든 형상들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바빌론 저쪽으로 옮겨 버리겠다.’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들을 섬기는일에 ‘내버려졌다’라는 사실을 주목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님의 ‘허용’은 언제나 복되고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허용은 심판 받을 만한 행위를 스스로의 자유로 하도록 내버려두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의해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허용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멋대로 우상숭배의 길에 빠져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상숭배의 결과 바빌론이 있는 곳, 약속의 땅의 동쪽으로 옮겨져버리게 될 것이다.
44 우리 조상들이 광야에 살 때에, 그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지시하신 대로 만든 것인데, 모세가 본 모형을 따라 만들었습니다.
45 우리 조상들은 이 장막을 물려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땅을 차지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그것을 그 땅에 가지고 들어왔고, 다윗 시대까지 물려주었습니다.
46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므로,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47 그러나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습니다.
이제 주제는 성전으로 바뀐다. 예언자들에대한 반대로 가득했던 그들은 결국 약속의 땅에서 추방당한다. 그들은 광야에서부터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던 공간 ‘성막’이 있었다. 그 성막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모세가 ‘모형’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모형’은 원본이 있다는 말이어야 한다. 이로써 구약 성경이 어떤 ‘모티브’가 있고 그것에 대한 재현이었다는 점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
성막은 다윗 시대까지 이어졌고, 성막은 솔로몬에 의해서 지어졌다. 그러나 스데반의 설명에 의하면 성전이 제공된 이유는 하나님의 거처를 마련하게 해 달라고 한 간구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거처가 필요하지 않으시다. 오직 성전이 제공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집안을 위하여 그 임재를 누구라도 보고 경험할 수 있길 원하는 왕의 간구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 약속의 성취가 ‘성전’이 아닌 ‘예수님’으로 성취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그런 하나님의 임재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였다.
48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언자가 말하기를
49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서 어떤 집을 지어 주겠으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 한 것과 같습니다.
스데반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신데, 인간이 만든 제한된 공간이 필요하실까 질문한다. 이것은 열왕기상 8장 27절의 솔로몬의 경배 속에서도 지적된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고, 땅이 하나님의 발판이신데, 인간이 만들어낸 재현물 속에 하나님을 가두고 거기에만 계실 수 있는 분으로 착각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모순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파괴되고 다시 지어진 성전일지라도 그곳을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있는 유일한 곳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속이고 있다. 스데반은 그 지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당신네 조상들이 한 그대로 당신들도 하고 있습니다.
52 당신들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예언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들은 의인이 올 것을 예언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제 당신들은 그 의인을 배반하고 죽였습니다.
53 당신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이들은 조상들이 한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계속해서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것처럼, 그들이 섬겨야할 하나님께서 제한된 곳에만 머물러계셔야 하는 분이 아니심에도 그들은 ‘성전’만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참 진리를 반대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으며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는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로써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이스라엘은 천사들이 전해준 율법을 받기는 했지만 지킨적이 없다. 그들은 들어도 듣지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이제 스데반이 보게 될 영광의 주님을 소개하게 될 텐데 그들 중 누구도 보지 못한다. 지금 하나님의 큰 일이 선언되고 있음에도 그들 누구도 듣지 못한다. 오히려 분노하고 부정한다. 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일관성이었다. 그들은 악에대해 신실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할 때, 하나님을 우리의 이성의 한계에 가두기 시작할 때 동일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존재들임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답습할게 아니라 우리가 받은 참된 약속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기꺼이 순종해야 한다. ‘듣기만하고 순종하지 않는 상태’는 결국 이스라엘의 반역과 다를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의 삶에 들린 복음에 기꺼이 순종하고 복종하기를 선택하기를 바라며 오직 성령께서 행하신 마음의 할례에 따라 오직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것임을 고백하는 삶 살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