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매우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바다쪽에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바닷가 뭍에 있었다.
2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면은 바닷가로 이동된다. 이전의 본문들에서도 예수님께서 바다로 나오셨던 장면을 볼 수 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매우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이 ‘무리’가 과연 긍정적인 제자 집단인가 의심스럽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서 예수님께 환호하기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지르기도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비유’로 가르치실 것이다. 그리고 이 비유는 무리 모두가 알고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 아님이 알려질 것이다. 비유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9 예수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우리는 내일의 본문에서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직접 해설하시는 내용으로 듣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은 이 말씀의 외적인 내용만 제한해서 생각해보자.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는 씨 뿌리는 사람, 떨어진 씨앗들, 다른 상태의 네 가지 땅이 등장한다. 이것은 매우 일상적인 요소들이고 듣고 있는 ‘무리’들은 이 이야기를 충분히 알고 숙지 하고 있으며 흥미롭게 이야기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일상적인 내용은 ‘무리’들에게 매우 혼란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저 당연한 내용과 이야기를 ‘왜’ 꺼내셨는지, ‘어떻게’ 적용해야하는지, ‘어디에’ 사용될 이야기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말씀의 의도일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해석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길가는 쟁기질이 되어 있지 않은 밭의 가장자리 길이었고 그곳에 떨어진 씨앗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다.
돌밭은 씨가 제대로 성장할만큼 깊이있는 토양이 없는 곳이다. 싹이 곧바로 나온다는 것은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곧바로 시들어버리는 상황과 연결되어 빠르게 열광적이었다가 빠르게 비난하는자들로 돌아서는 사람들과 잘 연결되는 것 같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식물이 ‘죽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강조되는 표현은 ‘열매를 맺지 못함’이다.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삼십배, 육십배, 백 배가 된다.
마가의 서순 흐름과 마태, 누가의 흐름이 차이가 있다. 특별히 마태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을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소개하는데, 마가는 거꾸로 삼십배, 육십배, 백배 라고 말한다.
마가의 경우 씨앗의 성공에 대한 점진성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길가는 실패, 돌밭은 성공후 실패, 가시밭은 성공후 열매 없음, 삼십배에서 백배는 성공후 열매들 양의 증가를 보여준다.
과연 무리는 이 중에 어떤 상태의 사람들인가.
예수님은 ‘들을 귀’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에서도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은 결국 비유를 듣는 이들이 ‘의미를 알아채고 적용하는’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는 말이다.
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의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그 비유들이 무슨 뜻인지를 예수께 물었다.
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12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장면은 무리가 사라지고 예수님 주위에 둘러있는 사람들과 열두 제자들만 남아있는 것으로 서술된다. 그들은 비유에 대한 의미를 질문한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말씀 앞으로 나선다. 그들은 무지를 무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질문하고 대화하고 때로 의심하고 논쟁하면서 답을 찾아갈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맡겨졌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말씀을 들으려는 자들에게 맡겨진다. 그들은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맺어지는 열매의 양은 각각 다를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다르다. 예수님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 내버려두실 것이다. 무리에 남겨져 있으면 희망이 없다.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자리, 제자들의 자리로 들어와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어디에서 적용되어야 하는지 늘 어렵게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가지고 말씀의 원저자이신 분께 질문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게 하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답게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주님께 질문하며 연구하며 읽고 듣고 깨닫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무리의 위치에서, 예수님을 알고 보고있는데서 그치지 말고, 직접 듣고 깨닫고 변화되는 제자로 나아오라. 오늘 그 말씀으로 깨닫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