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6:15-34
15 유다의 아사 왕 제 이십칠년에, 시므리는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나, 그의 통치는 칠 일 만에 끝났다. 시므리가 엘라를 살해하고서 왕위를 차지할 그 무렵에,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에 속한 깁브돈을 치려고 포진하고 있었다.
16 그러나 진을 치고 있던 군대는, 시므리가 반역하여 왕을 살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그 진에서 그 날로 군사령관인 오므리 장군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시므리의 반역은 칠일만에 종료되었다. 깁브돈은 엘라의 아버지 바아사가 포위에서 벗어나 왕위에 올랐던 상징적 도시였다. 이미 바아사 가문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져가는 상황이었으므로 시므리가 아니었더라도 가문의 왕권이 끝나는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일어날 일이었을 것이다. 다만 시므리가 바아사의 가문에 대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비극적인 반역과 최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며 스스로는 얼마나 철저히 무력해지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군사령관 오므리가 등장한다. 오므리는 매우 위대하고 영향력있는 왕이 된다. 고대 근동에서 오므리 가문은 매우 잘 알려진 가문이다. 그러나 오므리 가문이야말로 최악으로 이스라엘을 죄악의 구덩이에 빠뜨린 왕가였다.
17 오므리는 온 이스라엘을 이끌고 깁브돈으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포위하였다.
18 이 때에 시므리는, 그 성읍이 함락될 것을 알고는, 왕궁의 요새로 들어가서, 그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서, 자기도 불에 타 죽었다.
19 이것은 시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행을 하고,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가서,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한 그 죄 때문에 생긴 일이다.
20 시므리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꾀한 모반에 관한 것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깁브돈을 포위했던 이스라엘은 수도 디르사를 포위했다. 시므리는 자신이 오므리만큼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던것 같다.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시므리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버렸다. 왜냐하면 그는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물론 시므리가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갈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가 의문스럽다. 그가 왕이었던 시간은 겨우 7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왕좌에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앉았었다는 사실이고, 시므리고 동일하게 자신이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스스로 쟁취해낸 보좌라고 생각했다면 그의 최후, 종말은 당연했다. 배신과 배반으로 일으켜진 왕국은 스스로 자멸한다.
21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가서 그를 왕으로 삼았고, 그 나머지는 오므리를 따랐다.
22 그러나 오므리를 따르는 백성이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르는 백성보다 강하여서, 디브니는 살해되고, 오므리는 왕이 되었다.
23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일년에 오므리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열두 해 동안 다스렸는데, 여섯 해 동안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시므리의 죽음은 왕국을 두개로 쪼갰다. 디브니와 오므리는 서로 싸움으로써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다툰다. 결국 더 강력한 세력과 통치력을 가졌던 오므리가 왕이되었다. 이제 오므리 왕조의 시작이다. 오므리 왕조의 강력한 통치는 주변 국가들에게까지 미쳤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오므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우상숭배자요 악인으로 묘사되는 아합의 아버지이다.
24 그는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를 주고, 사마리아 산지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 산에다가 도성을 건설하였는데, 그 산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라서 그 도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하였다.
25 오므리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는데, 그 일의 악한 정도는 그의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였다.
26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모든 길을 그대로 따랐다. 오므리는 이스라엘에게 죄를 짓게 하고, 또 우상을 만들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27 오므리가 한 나머지 행적과 그가 부린 권세는,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 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28 오므리는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서 사마리아에 묻히고, 그의 아들 아합이 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었다.
성경은 오므리의 업적중에서 사마리아가 어떻게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시킬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오므리는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왕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 능력과는 별개로 그의 악함은 이전의 왕들보다 더 심했다. 오므리는 여로보암의 길과 더불어 우상을 만들어내는 죄를 더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하나님을 외면하고 버려버렸는가? 우리가 아합의 예를 통해서도 살펴보겠지만 그들이 완전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렸다기 보다는 완전히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희석하고 변질시켜버린 신앙이었다. 그 조상들의 우유부단함이 이제 어떤 심각한 우상숭배로 발전했는지 보게 될 것이다.
29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스물두 해 동안 다스렸다.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은 그 이전에 있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1 그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앞질렀다. 그는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으며, 더 나아가서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였다.
32 또 그는 사마리아에 세운 바알의 신전에다가 바알을 섬기는 제단을 세우고,
33 아세라 목상도 만들어 세웠다. 그래서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
이제 아합의 통치 속에서 얼마나 심하게 악을 행했는지 점점 분명한 어조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아합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는데, 엣바알이라는 이름의 뜻은 바알의 사람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아마도 바알 제사장을 겸했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본문은 아합이 적극적으로 바알 숭배자가 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포함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신이 믿는 바알과 다르게 백성들의 종교를 감안하여 지은 이름일 수도 있지만, 혼합된 양식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실 우상숭배는 맹목적인 다른 신적존재를 믿는 것보다 혼합된 우상숭배가 더욱 위험하다. 그것이 극악한 독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예처럼 아합은 아내의 적극적인 영향력 아래 있었을 것이다. 최악의 악녀로 등장하는 이세벨은 다윗 가문마저 위기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34 아합 시대에 베델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 주님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시켜서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그는 그 성의 기초를 놓으면서는 그의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성문을 달면서는 그의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우리는 아합의 통치로 말미암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는 끝났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어두워보이는 아합의 시대에도 여전히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 땅에 약속하셨던 약속 그대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던 그대로 성의 기초와 성문을 다는 자들은 아들을 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업신여기는 북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고발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시선을 두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만든다.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하나님이 눈을 감고 계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무한하신 인자하심으로 참고 계실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아주심을 근거로 터무니없는 용기를 갖는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인생의 온갖 기회들을 내것인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그 뒤에 언제나 우리 모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할수밖에 없고 겸손해야 한다. 아합의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끝난게 아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으며 뒤쫓은 사람들이 존재했음이 밝혀질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신실하심을 증명하실 것이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분을 다시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겸손히 그 통치에 따르길 결단하면서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