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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 열왕기하 4:1-17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 가운데서 남편을 잃은 어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며 호소하였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예언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준 사람이 와서, 저의 두 아들을 자기의 노예로 삼으려고 데려가려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이를 키우는 과부의 이야기는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와 닮아있다. 사르밧 과부도 밀가루와 기름을 통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데, 오늘 이야기도 ‘기름’을 통해서 아이들을 지키는 이야기다. 물론 두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특별히 오늘의 이야기는 예언자 수련생들 아내 가운데 한 사람이 구원을 받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을 지켜주시는 이야기가 인상깊다.
2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되겠는지 알려 주시오. 집 안에 무엇이 남아 있소?” 그 여인이 대답하였다. “집 안에는 기름 한 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3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가서 이웃 사람들에게 빈 그릇들을 빌려 오시오. 되도록 많이 빌려 와서,
4 두 아들만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그 그릇마다 모두 기름을 부어서, 채워지는 대로 옆으로 옮겨 놓으시오.”
5 그 여인은 엘리사 곁을 떠나, 두 아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그 아들들이 가져 온 그릇에 기름을 부었다.
6 그릇마다 가득 차자, 그 여인은 아들들에게 물었다. “그릇이 더 없느냐?” 아들들은 그릇이 이제 더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기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7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가서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그 나머지는 모자의 생활비로 쓰도록 하시오.”
엘리사는 집 안에 기름 한 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웃들에게 빈 그릇들을 빌려서 그 곳에 기름이 채워지도록 하라고 시킨다. 여인은 명령대로 순종했고, 그릇들에는 기름이 가득채워졌다. 기름을 판 돈으로 생활비가 생기고 아들들은 종으로 팔려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생명’을 구원하는 ‘기름’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기름은 단지 소모품에 그치지 않는다.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은 기름이 생명을 구원한다는 의미와 결합하여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1차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들의 생명이 보전되게 하셨다는 것으로 읽기를 마무리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넘치게 기름부어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명을 보전하고 풍요로움과 책임져주심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를 볼 수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도 아이와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두 이야기는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묶여있음을 알 수 있다.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 한 부유한 여인이 있었다. 그가 엘리사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하여, 엘리사는 그 곳을 지나칠 때마다 거기에 들러서 음식을 먹곤 하였다.
9 그 여인이 자기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우리 앞을 늘 지나다니는 그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내가 압니다.
10 이제 옥상에 벽으로 둘러친 작은 다락방을 하나 만들어서, 거기에 침대와 탁자와 의자와 등잔을 갖추어 놓아 둡시다. 그래서 그가 우리 집에 들르실 때마다, 그 곳에 들어가서 쉬시도록 합시다.”
엘리사는 수넴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고, 부유한 여인의 집을 지나갔다. 그곳에서 음식을 먹곤했는데, 여인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을 극진하게 대접한다. 앞서서 예언자 수련생들의 아내가 자신의 죽은 남편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수넴 여인과 남편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아합과 이세벨을 통해 바알과 아세라의 영향력이 막강했을 시기였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사역자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2장에서 엘리사를 모욕했던 자들이 곰에게 찢겨 죽은 것과 정확히 정 반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존중과 헌신은 ‘그 사람 자체’에 대한 헌신보다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으로 비쳐진다.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갔다가, 그 다락방에 올라가 누워 쉬게 되었다.
12 엘리사가 자기의 젊은 시종 게하시에게,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게하시가 그 여인을 불러오니, 그 여인이 엘리사 앞에 섰다.
13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말하였다. “부인께 이렇게 여쭈어라. ‘부인, 우리를 돌보시느라 수고가 너무 많소. 내가 부인에게 무엇을 해드리면 좋겠소? 부인을 위하여 왕이나 군사령관에게 무엇을 좀 부탁해 드릴까요?’ ” 그러나 그 여인은 대답하였다. “저는 저의 백성과 한데 어울려 잘 지내고 있습니다.”
14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물었다. “그러면 내가 이 부인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게하시가 대답하였다.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부인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의 남편은 너무 늙었습니다.”
엘리사는 호의를 베풀어주는 여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질문한다. 그러자 여인은 ‘저의 백성과 어울려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도 부자인 여인의 집은 수넴 지역에서 유지 역할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답변은 단지 관계적 측면을 넘어서 마을의 질서와 관련해서도 읽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여인에게 ‘아들’이 없다는 점이다. 성경 속 문화에 따라 아이가 없는 것은 ‘저주’의 상징과 같았다. 이 여인은 상당한 재력과 포용력으로 지역에서 인정받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 수 있고, 신앙적으로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에게 ‘자녀 없음’은 이 모든 좋은 것들을 상쇄하고 부정적 평가를 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남편이 너무 늙었으므로, 그녀에게서 ‘희망적’인 이미지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성경 본문들에 따라서 태의 문을 열어주신 것이 다시금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시며 생명의 보존과 허락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은혜라는 점을 강조할 수있다. 지금은 생명이 끊어져 있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실 것이다.
15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여인을 다시 불러오게 하였다. 게하시가 그 여인을 부르니, 그 여인이 문 안에 들어섰다.
16 엘리사가 말하였다. “내년 이맘때가 되면, 부인께서는 품에 한 아들을 안고 있을 것이오.”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예언자님! 하나님의 사람께서도 저 같은 사람에게 농담을 하시는 것입니까?”
17 그러나 그 여인은 임신하였고, 엘리사가 말한 대로 다음해 같은 때에 아들을 낳았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여인은 ‘농담’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분명 자신의 나이든 남편의 생식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의심했고 ‘비웃었다’. ‘농담’의 기능이 ‘웃음’이라는 점을 떠올려볼 때, 이 이야기는 분명히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허락’하심은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보다 더 넓게 이스라엘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생물학적 한계와 사회적 한계를 넘어서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분이시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미래가 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생명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시고 기쁨과 소망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 사회적, 문화적, 생물학적 한계’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창조하시며 넘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공급하신다. 그러니 우리의 한계를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한계 없으신 능력을 경험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오늘 하나님을 그렇게 선택하고 생명 얻기를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