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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 열왕기하 3:1-1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 십팔년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렸다.
2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그의 부모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우상들을 철거하였다.
3 그러나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린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저지른 것과 같은 죄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그로부터 완전히 돌아서지도 못하였다.
아합의 아들 요람은 사마리아에서 열두해를 다스렸다고 말한다. 시기적으로 아합의 죽음은 여호사밧 17년이었다고 왕상 22장에 나온다. 또 왕하 8장을 참고하면 여호사밧이 아직 유다의 왕일 때 여호람이 유다를 통치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따라서 요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렸다는 것은 아합의 죽음 이후 12년이라기보다는, 그의 형 아하시야를 포함해서 아버지 아합 때부터 이미 영향력을 행사했거나, 아니면 사마리아에 대한 부분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쨌든 요람은 분명 아버지 아합처럼 악하지는 않았다. 바알의 우상들을 철거하는 일도 행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전히 ‘돌아서는 일’ 이다.
우상들을 ‘철거 하다’ 와 ‘돌아서다’는 동일한 단어로 쓰였다. 구약의 다른 표현들은 ‘슈브’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저자는 의도적으로 ‘철거한 일’과 ‘돌아서다’ 라는 단어를 동일한 단어로 사용함으로써 그의 진정한 돌이킴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상들을 철거 했지만, 완전한 철거가 될 수 없었다.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사람이었는데, 이스라엘 왕에게 암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조공으로 바쳤다.
5 그러다가 아합이 죽은 뒤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였다.
우리는 열왕기하 1장의 시작에서부터 모압 왕의 배반에 대해서 읽었다. 모압과 에돔 지역은 다윗 왕의 시대, 솔로몬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스라엘의 통치 아래 있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이들에대한 통치권을 무력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암시를 보여준다. 이것은 단지 군사 작전, 통치력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 약속의 땅에 대한 축소와 연결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이스라엘의 참된 왕은 아합이나 요람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시다.
6 그 때에 요람 왕은 그 날로 사마리아로부터 행군하여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 전체를 점검한 다음에,
7 전쟁터로 가면서, 유다의 여호사밧 왕에게 사절을 보내어 물었다.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모압을 치러 올라가시겠습니까?” 여호사밧이 대답하였다. “물론 함께 올라가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한 몸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아닙니까? 나의 군대가 곧 임금의 군대이고, 나의 군마가 곧 임금의 군마가 아닙니까?”
8 이에 요람이 “그러면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여호사밧은 에돔의 광야 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요람 왕이 군대 전체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유다의 여호사밧에게 사절을 보내서 함께 그 땅을 정복하자고 요청한다. 지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동맹 상태이고, 모압과 에돔에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는 상황이므로 이런 전략적 동맹관계가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장면이 보여주는 함의는 더욱 살벌하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점점 아합의 죽음 때와 동일한 플롯으로 진행되어가기 때문이다. 요람은 어느 길로 ‘올라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질문하는데, 올라감에 대한 이야기와 정반대로, 이들은 ‘내려감’으로 이 전쟁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9 그래서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함께 출정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길을 돌아 행군하는 이레 동안에, 군대와 함께 간 가축들이 마실 물이 바닥났다.
10 이스라엘 왕이 탄식하였다. “아, 큰일났구나! 주님께서 우리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겨 주시려고 불러내신 것이 아닌가!”
11 그러나 여호사밧은 “여기에는 주님의 예언자가 없습니까? 이 일을 주님께 물을 예언자가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왕의 신하 가운데 하나가 대답하였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라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시중을 들던 사람입니다.”
12 그러자 여호사밧이 말하였다. “그에게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갔다.
이스라엘, 유다, 에돔은 함께 모압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그런데 그들이 ‘올라간’ 곳에서 물이 충분하지 않아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서 모압의 손에 이 세 왕을 죽이시려하는가 한탄하며 하나님께서 악의적인 전략을 펼치셨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름이 등장하는 왕은 오직 ‘여호사밧’이다. 여호사밧만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왕이었다. 우리는 역대하에서 여호사밧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술하는지 읽어볼 수 있다. 모압과 암몬 자손이 여호사밧에게 맞서 싸움을 걸어온 이야기가 역대하 20장에 등장하는데, 여호사밧은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구함으로 위기를 빠져나갔다고 말한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동맹을 맺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을 뻔 했을 때조차 살아난 이유를 하나님이 도우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여호사밧이 공과가 분명히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긍정적’인 왕인것은 분명하다.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사밧은 아합 때와 동일하게 선지자를 찾는다. 그리고 엘리사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12절은 우리가 앞서 지적한것처럼 ‘내려가서’ 엘리야를 만난다. 그리고 그 이름 중에 오로지 ‘여호사밧’ 만이 이름으로 기술된다.
누가 과연 참된 왕인가?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그 질문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유일하신 왕으로 선포하는 자만이 ‘땅’에 대한 통치권을 갖는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다스릴 때만이 전쟁은 승리할 수 있다. 그들이 ‘올라’ 가서 승리하려하지만 ‘내려갈 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여호수아의 말은 다시금 울려퍼지는 것 같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만 온전히 선택하지 않으리라고 예언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나 오직 나와 내 집은 주님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오로지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들에게 ‘약속’을 유지되고 성취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만을 선택하는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며, 주님께로 어디든 나아가 긍휼과 은혜 얻기를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