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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 앞에서 / 사도행전 10:17–33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7 베드로가, 자기가 본 환상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면서, 속으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서, 문 앞에 다가섰다.
18 그들은 큰 소리로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에 묵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19 베드로가 그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20 일어나서 내려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했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의아해한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은 문 앞에서 큰 소리로 베드로 시몬을 찾는다. 여기에서 고넬료의 하인들이 ‘베드로라는 시몬’ 이라는 이름을 부른 것을 생각해보면, ‘시몬’이라는 이름이 혼동되지 않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름을 베드로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가 환상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그 부름이 바로 자신에 대한 부름이라는 것과 ‘주님’께서 보내신 것임을 확인한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의심을 제거하신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베드로는 곧장 순종한다.
21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내려가서 물었다. “보시오, 내가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이오. 무슨 일로 오셨소?”
22 그들은 베드로에게 대답하였다. “고넬료라는 백부장이 보내서 왔습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온 유대 백성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집으로 모셔다가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를, 거룩한 천사에게서 받았습니다.”
23 베드로는 그들을 불러들여서 묵게 하였다. 이튿날 베드로는 일어나서 그들과 함께 떠났는데, 욥바에 있는 신도 몇 사람도 그와 함께 갔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하인들이 만나 목적을 확인한다. 하인들은 고넬료라는 백부장에 대해서 소개한다. 의로운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사람/ 천사를 통해 베드로의 말을 들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베드로의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는 이 메시지의 이유와 목적을 매우 좁혀놓는다. 이것은 일반적인 유대교 성경강론을 들으라는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넬료가 경외하고 예배하며 경건하게 삶으로 섬기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루시고 성취하시고 완성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 ‘복음’에 대한 이야기다.
이제 베드로는 욥바 교회의 성도 몇사람과 함께 이방인들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것이다. 여기에서 욥바의 성도들이 함께 간것은 매우 중요하다. 베드로 혼자서 이방인의 회심과 성령임재를 본게 아니라 함께 보았으므로 증인이 되어 복음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의 영이 임하게 되었음을 증명해줄 것이다.
24 그 다음 날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들어갔다. 고넬료는 자기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25 베드로가 들어오니, 마중 나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26 그러자 베드로는 “일어나십시오, 나도 역시 사람입니다” 하고 말하면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들어간다. 고넬료는 미리 소식을 듣고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친구들은 아마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었을 것이고, 친척들은 자기 식구들을 말하기 때문에 가이사랴에 머무르고 있는 로마인들 중에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경외심이 있는 이들은 모두 모았다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준비됨이 교회가 곧바로 시작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있음을 보게 된다.
베드로가 들어오자 고넬료는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한다. 이것은 고넬료가 베드로의 도착을 얼마나 고대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환상’이 실재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함으로써 베드로가 평범한 사람 이상의 존재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백부장이 ‘절’했다라는 모습은 이방 신전 예배 방식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것으로 존경과 경배를 표현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여전히 ‘이방인’ 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그에겐 아직 한계가 존재한다.
베드로는 곧바로 제지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역시 동일한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오직 영광과 경배의 대상은 주님이시다.
27 그리고 베드로는 고넬료와 말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28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29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반대하지 않고 왔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오라고 하셨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처한 유대인으로써의 상황과 환상 중에 지시하신 상황을 동시에 말함으로써 자신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유대 사람이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스라엘은 이방인과의 접촉에서 ‘도덕적 부정’과 ‘정결례’로써 음식규정을 어김으로써 부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정결규례들에 대해서 깨끗하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그들과 나누는 식탁의 부정에 대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고넬료의 부름에 반대하지 않고 기꺼이 온 것이다. 만약 환상이 없었다면 베드로의 세계관 속에서 이방인과의 교제는 당연히 정당하게 거부되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아닌 명령에 의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떤 두려움도 없이 이 만남이 진행된다. 베드로는 무슨일로 오라고 했느냐고 질문함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위한 포석이 준비된다.
30 고넬료가 대답하였다. “나흘 전 이맘때쯤에, 내가 집에서 오후 세 시에 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눈부신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기를 ‘고넬료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자선 행위를 기억하고 계신다.
32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그는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다’ 하였습니다.
33 그래서 나는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이 경험한 천사의 등장에 대해서 설명한다. 10장은 고넬료의 환상-베드로의 환상- 베드로의 환상 재진술 - 고넬료의 환상 재진술로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건들이 하나로 짜여져있는 긴밀한 연결요소들을 발견하게 만든다. 그만큼 경험한 당사자들에게는 확실한 체험에 기반한 확신 속에서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고 독자들에게는 선명한 하나님의 일하심 속에 인물들의 ‘순종’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고넬료도 이방인으로써의 한계가 있고, 베드로도 유대인으로써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 모두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따라가면서 의심과 어려운 장애물들을 기꺼이 뛰어넘고있다.
고넬료는 자신과 더불어 함께 있는 가족과 동료들 모두가 주님께서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고넬료와 함께 모여있는 이들이 얼마나 엄숙한 마음으로 이 상황에 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하나님 앞에’ 모임으로써 적극적으로 이 말씀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확신과 순종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이 두사람을 통해서 다시 반추해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우리는 당시의 사람들처럼 환상과 꿈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자연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성경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 앞에’ 서듯이 엄숙하고 엄중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읽지 않고 질문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조차 제대로 듣고 순종하지 않는데 그 이상의 환상과 꿈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무례한 요구다. 오늘 다시금 주님이 주신 말씀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새롭게 하기를 다짐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