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게 일어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14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내가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확신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지하감옥같은 곳보다는 가택연금에 가까운 상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친위대’라고 번역된 프라이토리온은 로마 군대 진영 내의 지휘관 텐트를 가리키던 말이었다. 후에 ‘총독관저’라는 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끔찍한 상태의 감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이곳에서의 상황이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빌립보서가 기록되던 때를 대략 60년경으로 상정한다면, 네로 황제의 폭정이 이어지던 때다. 프라이토리온이 황제의 친위대가 있는 곳이고 황제 통치의 핵심적인 영역이었다면 정치적으로 불안함이 피부에 닿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질서의 탁월하신 왕을 소개한다는 것은 대안적 가치를 제시한다는 말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급진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했을지라도 주님 안에있는 형제자매들이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15 어떤 사람들은 시기하고 다투면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어떤 사람들은 좋은 뜻으로 전합니다.
16 좋은 뜻으로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복음을 변호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전하지만,
17 시기하고 다투면서 하는 사람들은 경쟁심으로 곧 불순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들은 나의 감옥 생활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18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철저히 자신이 복음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감옥 안에 있으나 밖에 있는 것이 관심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제대로 변호할 수 있을까가 진짜 관심사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향해 적대심을 가지고 시기와 다툼으로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이니 ‘기뻐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시기와 다툼과 경쟁심과 불순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고려해야 할 몇가지 사항이 있을 것 같다. 먼저는 그들이 정말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다른 본문들에서 사도 바울을 괴롭게하는 율법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참된 복음을 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가 없는 ‘진리’만 경쟁적으로 팔아먹는 이들을 우리는 ‘옳다’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달하는 자’의 오류가 있을지언정,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참된 코이노니아 안으로 들어오는 신자들이 있다면 바울이 말한 것처럼 ‘기뻐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짜 지혜다.
19 나는 여러분의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도우심으로 내가 풀려나리라는 것을 압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나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할 것입니다.
25 나는 이렇게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발전과 믿음의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할 것으로 압니다.
26 내가 다시 여러분에게로 가면,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 때문에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감옥 안에 갇혀있는 사도 바울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는 것에 모든 관심과 인생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나 죽으나 바울에게서 드러나시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논의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개념을 떠올리게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은 ‘나는 죽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만으로 살아가는 인생,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시는 인생으로의 변화다. 따라서 이 삶과 죽음 사이에 끼여 있는 상황에서 풀려나는 것도, 죽는 것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나는 것이 제일의 목적이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이 ‘육신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직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 변호사로써 바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필요였을 것이다. 바울은 이 역할이 필요하다는 확신으로 가득차있다. 그래서 다시 빌립보를 방문할 계획을 말한다. 물론 지금 바울의 원대한 계획은 땅 끝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땅 끝 선교까지 마치고 돌아 온 후에 빌립보 교인들을 만날 수 있다면 바울을 후원했던 빌립보교회에게 이보다 더 큰 자랑꺼리가 없을 것이다. 빌립보교회의 수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27 여러분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 정신으로 굳게 서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함께 싸우며,
28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29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30 여러분은 내가 하는 것과 똑같은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으며,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지금 소문으로 듣습니다.
바울이 머물러 있는 공간이 프라이토리온으로 황제의 친위대가 있는, 군대 진영의 막사라고 생각해보면 바울이 지금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군인들의 활동양식을을 예시로 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은 지금 ‘군대’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빌립보교회는 군인들이 하나의 정신으로,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로마 군대의 강력한 방패 전술인 테스투도를 생각해보면 그들은 유기적인 집합체로써 서로를 감싸주고 함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한쪽이 허물어지면 그것을 메꾸기 위해서 부상병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재빠르게 자리를 메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훈련하는 모습을 바울이 보았다면 하나의 정신으로 복음과 신앙을 위해 싸우라는 권면은 매우 실재적이고 강력한 군대의 훈련과 재편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도 바울이 어떤 일에도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리길 바라는데, 이것은 군인들의 승전행렬과도 관련이 있다. 승전 행렬을 통해서 승전의 군인들은 영광스러운 행진으로 로마를 가로지르게 되는데 이때의 전쟁 포로들은 곧 죽음이 임박한 죽음의 행진이었다. 따라서 두려움 없는 복음의 행렬은 승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승리의 행진이었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임박한 죽음의 소식이었다.
그러나 ‘전쟁’은 승리의 소식을 가져왔지만, 아직 전투가 남아있다. 이 전투는 철저히 아직 남겨진 ‘숙제’ 같은 것이다. 이것은 이미 판도가 뒤집어진 상황에서 전사들에게 공훈을 세울 수 있는 기회다. 강력하게 훈련된 공동체가 믿음의 진보와 승리를 이룬다면 그들에게 돌아갈 승리의 면류관은 반드시 제공될 것이다. 바울은 이 투쟁을 듣고 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이 치열한 복음을 들고 싸우는 전쟁은 하나 된 ‘사랑’을 근거에 두어야 한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종’이 되심으로, ‘섬김과 죽음’을 통해 이기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며 모방하고 카피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된 공동체는 철저히 이 승리의 열망을 가지고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서 강력한 군대의 이미지를 보게 됨과 동시에, 이 사랑의 군대가 가지는 강력한 승리의 소망을 보게 된다. 이 전쟁은 승리로 끝날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종적으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대는 더욱 사랑으로 하나되어 탁월한 군사로써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군인은 사나 죽으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우리의 명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사나 죽으나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이시므로 이 명령에 따라 사는 삶은 언제나 복되고 유익하다. 오늘 이 복음으로 무장하여 그리스도의 탁월한 군사로 살아가는 삶 살기를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바울은 프라이토리온이라는 시위대의 공간 즉, 군대가 관리하는 공간에 갇혀있다.
2.
그곳에서도 여전히 복음은 확장되고 있으며 자신이 갇혀있음에도 복음이 확장되는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3.
바울은 군대의 훈련과정들을 지켜보며 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로써 승리를 위한 전투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4.
오로지 승리를 위한 명령에 움직이는 군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위한 사랑의 명령에 하나되어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