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하필QT] 간청과 허락 / 마가복음 5:1–2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예수님은 이전 본문에서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고 바다를 건너 오셨다. 사건은 곧바로 시작되고 이어진다. 배에서 내리시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나와 예수님을 만난다.
이 사람에 대한 과거 설명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도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괴력을 가졌고, 고립된 상태에서 지냈으며 신체적, 심리적으로 매우 큰 고통에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이 강력한 귀신에 사로잡힌 모습이 강조되면서 이전 본문에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분, ‘자연만물’에 대한 통치권을 발휘하신 분께서 ‘영적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발휘하실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강력한 귀신의 사로잡음이 전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신의 영향력은 한 사람을 파괴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매우 실재적인 괴롭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위에서 위태로운 풍랑에 놓였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존재의 강력한 괴롭힘을 경험하고있는 이 사람도 위태로운 상태이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외쳤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두고 애원합니다.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R.T. 프란스의 지적처럼 이 장면은 ‘이름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달려와 엎드려 ‘더 없이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소리친다. 귀신의 존재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다. 이것은 이전 본문에 ‘그가 과연 누구이기에 바람과 폭풍도 잠잠하게 하는가’ 질문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다. 제자들보바도 귀신이 에수님에 대해서 더 잘알고 있다.
8절은 두 가지 의문점을 던진다. 예수님은 언제 ‘악한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는가? 왜 명령하셨음에도 귀신은 쫓겨 나가지 않았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악한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하신 것이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번에 쫓아내신 것이 아니므로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자들과 이방인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귀신에게 ‘이름’을 질문하신다. 우리는 먼저 이 대결이 ‘이름’을 앎으로 능력대결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탄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군대’ 이다. 그마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이유를 잘 설명하는 정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군대’라는 표현은 귀신 스스로 부풀린 이름일 수 있다. 군대라고 말한 ‘레기온’은 6000명의 로마 군대 편제 이름이다. 그러나 군대 귀신이 들어간 돼지의 숫자는 대략 2000이다.
10 그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하였다.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10절에서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것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사용되었다. 다라서 간청한 주체는 귀신들이라기 보다는 ‘귀신들린 사람’으로 본 것 같다. 그렇다면 귀신들린 사람이 그 지역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이해 될 수 있을 것 같다. 12절에서는 귀신들이 간청한다. 여기에서는 ‘복수’로 사용되어 있어서 귀신들이 말했던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청을 ‘허락’ 하신다. 우리는 계속해서 ‘간청’과 ‘허락’을 보게 될 것이다. 악한영에 사로잡힌 자의 간청, 악한 영의 간청 모두가 다 ‘허락’ 된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마가는 그 엄청난 경제적 손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돼지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에 대한 묘사만 존재한다. 우리는 ‘군대’가 ‘바다’에 빠져 죽은 이야기를 ‘출애굽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장면은 이방인 지역에서 벌어진 새로운 출애굽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1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달아나 읍내와 시골에 이 일을 알렸다. 사람들은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보러 왔다.
15 그들은 예수에게 와서, 귀신 들린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이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16 처음부터 이 일을 본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전 본문에서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사건을 보고 제자들은 ‘두려워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제정신이 들어 앉은 사람을 보고서 ‘두려워한다’. 엄청난 영적 지각변동의 사건이었고 명확한 기억과 근거들로 남은 사건이기에 사람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간청은 ‘떠나달라’ 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떠나 달라는 간청은 아직 이 놀라운 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모든 간청은 허락된다. 하지만 하나의 간청은 허락되지 않는다.
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다.
19 그러나 예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집으로 가서, 가족에게, 주님께서 너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너를 불쌍히 여겨 주신 일을 이야기하여라.”
20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데가볼리에 전파하였다. 그리하니 사람들이 다 놀랐다.
귀신들렸던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가고 싶다. 그동안 그 지역에서 살면서 남아있을 편견과 눈초리를 감당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경험을 예수님과 함께 다님으로 계속해서 경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도 가졌을지 모른다. 한 마디로 ‘제자’가 되길 원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라고 하셨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네 집, 가족에게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라고 명령 받는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한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적 질서를 한 번에 정리하실 수 있는 분이심이 증명된다. 바다와 바람이 순종하듯이 제 아무리 강력한 영적존재도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순종은 회복되고 제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에게는 ‘허락’되길 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오히려 ‘거절’된다. 그러나 그 거절로 인해서 그 사람은 이방인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받은 첫번째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제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특별한 이야기를 소유한 제자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복종이고 굴복이나, 자연스러운 순종으로 나아갈 때,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시작 될 것이다. 오늘 참된 순종을 생각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