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후 세 시의 기도 시간이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을 사람들이 떠메고 왔다. 그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하려고, 이 못 걷는 사람을 날마다 ‘아름다운 문’ 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혀 놓았다.
오후 세 시의 기도 시간은 정기적인 기도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니까, 아마도 나면서부터 못 걷는 사람은 계속 부딪히며 보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게 만드려고 이 사람을 ‘아름다운 문에 ‘앉혀 놓는다.’ 여기에서 구걸하는 사람은 어떤 인격적 존재로 등장하지 않고 ‘물건’처럼 취급당한다는 점에서 성전의 ‘아름다운 문’과 비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아름다운 문은 아마 고린도에서온 동으로 만들어진 니카노르 문일 것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문은 다른 9개의 문보다 가장 비싼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었고, 성전으로 올라가는 이들은 번쩍이는 금과 은의 아름다움에 압도되며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다. 금과 은은 그런점에서 이 지체장애인 주변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 거의 유일한 물질들이었다.
3 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구걸을 하였다.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그를 눈여겨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보시오!”
5 그 못 걷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니 하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베드로와 요한이 정기적으로 예배하러 가는 시간에 마주치던 그를 ‘눈여겨’ 본다. 그리고 못 걷는 사람을 향해 ‘우리를 보라’고 요구한다. 못 걷는 사람은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며’ 무엇을 줄까 기대한다. 여기에서 ‘보다’ 라는 단어가 다양한 표현으로 매우 집중도있게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서로의 시선이 얽혀들어가는 과정가운데서 두 다른 시선의 방향은 전혀 다른 기대감을 갖는다. 못 걷는 사람은 여전히 ‘금과 은’을 기대하고 바랄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의 시선은, 주님의 통치와 다스리심 안에서 다시 걷고 뛰게 될 ‘새로운 창조’를 기대할 것이다.
6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8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베드로가 은과 금이 없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은과 금으로 번쩍이는 성전과 문의 장식들이 줄 수 없는 더욱 가치 있는 것에 대해 시선을 돌리라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이 기적의 놀라움은 그 사람이 ‘나면서 부터 앉을 수밖에 없는 선천적 기형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즉시] 발목에 힘을 얻어 벌떡 일어나 걸었다는 점이다. [즉시]라는 표현에서 생각해볼 것은 일반적으로 몇개월만 깁스를 해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재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가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었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다리가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걷고 뛰며 찬양하며 ‘성전’으로 들어간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문에 짐짝처럼 놓여진 존재가 아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 에덴이 재현된 성전으로 들어간다. 이로써 우리는 종말에 우리가 완벽히 새롭게 다시 태어나 들어가게 될 영원한 우리의 나라를 기대하게 된다.
9 사람들은 모두 그가 걸어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임을 알고서, 그에게 일어난 일로 몹시 놀랐으며, 이상하게 여겼다.
11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머물러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솔로몬 행각이라고 하는 곳으로 달려와서,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곧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그는 40세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앉아서 구걸하던 기간만도 최소한 30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꽤나 널리 알려졌으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그가 걷고 뛰며 ‘온전해진 상태’로 성전으로 들어가 찬양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 일을 일으킨 것으로보이는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달려든다.
12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13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 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14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15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16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기적의 주체자가 자신과 요한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의 어떤 능력과 경건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오로지 [예수]께서 이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이 설명을 잘 보면, 이 기적을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이 ‘죽으심’과 그 이유,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의 능력의 효과.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며, 그것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전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살리셨으므로, 반역자가 된 당신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확실한 복음으로의 초대다.
17 그런데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20 그러면 주님께로부터 편히 쉴 때가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21 이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빌어서 말씀하신 대로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마땅히 하늘에 계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유가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 위하여 예배의 자리로 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참된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다. 따라서 그 무지를 벗고 회개하고 돌아와 죄 씻음을 받는다면 이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고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고, 이제 모든 만물을 회복하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견하게 되리라고 선언한다.
22 모세는 말하기를 ‘주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동족 가운데서 한 예언자를 세워 주실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라.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백성 가운데서 망하여 없어질 것이다’ 하였습니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서 예언한 모든 예언자도, 다 이 날에 있을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25 여러분은 예언자들의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악에서 돌아서게 하셔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시려고, 먼저 자기의 종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의 완성자이심이 확인된다. 베드로는 모세를 통한 예언,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은 예언자들이 오직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돌이킬 때, 악에서 돌아서게 하시며 ‘죽음’을 정복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시작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이 복음으로의 초대에 한 사람 한 사람을 초대한다. 그 부름에 답할 때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경험한 못 걸어다녔던 지체장애인처럼 완전히 다시 걷게됨, 다시 창조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또한 그 다시 걷게 됨을 경험하길 소망한다. 영적인 무지가 벗겨지고 다시 새롭게 태어난 생명으로 소생한 새 창조가 우리에게 일어나길 소망한다. 이로써 우리의 찬양과 경배가 에덴의 재현인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영원한 에덴을 향하여 걷고, 뛰며, 찬양하며 멈추지 않고 전진하길 소망한다. 그 다시 살리심의 은혜를 소망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