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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살아계신 주님의 통치 / 사도행전 4:32–5:11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32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33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사람들은 모두 큰 은혜를 받았다.
34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한 마음과 한 뜻이라는 표현이 구약성경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기본적인 형태는 신명기 6:5절에서
5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라고 한데서 비롯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전적인 주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이므로, ‘자기의 것’을 우선하여 갖는 것을 내려놓게 만든다. 우리가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것이 사유재산을 부정하려는 본문으로 읽으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토라에서 다루는 것처럼 하나님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하 여러가지 법률을 제정하셨고, 그 법의 목적에 맞게 자신의 것을 팔아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을 함께 돌봤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 라는 표현은 절대적 경제균등을 이뤘다기 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들을 적극적으로 채워줌으로써 절대 빈곤이 해소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여기에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 이웃의 가난을 돌보는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사랑이 곧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고, 그 근거가 ‘부활’의 영광을 소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옳겠다.
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37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은 바나바가 소개되고, 그가 자신이 가진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위로의 아들에서 ‘위로’가 보혜사로 번역된 ‘파라클레토스’를 어원으로 하는 파라클레세오스로 되어 있는데, 다시 말하면 ‘위로의 아들’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예언의 아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도행전의 다른 본문을 참고하면 바나바는 예언자요, 교사로 불렸고, 고린도전서에는 사도와 같이 인정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볼때, 바나바의 위로는 말씀을 통한 참된 위로를 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선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살펴볼 수 있는데,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 곧 탁월한 ‘예언’이 될 수 있으며, 이 말씀에 온전히 반응하는 것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확장이 이웃을 사랑하는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삶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은 결코 피상적이지 않고 실재의 삶으로 내려와 하나님의 관심사에 있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현실로 구현된다.
1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함께 소유를 팔아서,
2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놓았는데, 그의 아내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떼어놓고 난 나머지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3 그 때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니아는 들으시오.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사탄에게 홀려서, 그대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의 얼마를 몰래 떼어놓았소?
4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의 것이 아니었소? 또 팔린 뒤에도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소?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오.”
5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숨졌다. 이 소문을 듣는 사람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6 젊은이들이 일어나, 그 시체를 싸서 메고 나가서, 장사를 지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를 팔아 사도들에게 준다. 그런데 그 값의 얼마를 따로 떼어 놓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따로 떼어 놓은 값을 표현하는 말이 ‘자기를 위해서’ 따로 떼어 놓았다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전의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의 동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함으로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잘못된 동기에서부터 시작한 헌신은 베드로에 의해 핵심을 지적받는다. 아나니아는 [사탄에게 홀려서 성령을 속였다] 여기에서 ‘홀리다’ 라는 것은 사탄에게 완전히 마음을 내어주었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성령 충만해야 할 영혼이 사탄으로 충만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가 본문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고 그 돈으로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서 따로 떼어 놓은 것 외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함으로써 ‘영향력’과 ‘명성’을 사려고 했다. 그들의 ‘위장’은 어김없이 까발려진다. 자기를 의롭게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만드는 위장은 힘없이 벗겨진다. 결국 아나니아는 죽음으로 그 장소를 떠난다.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다른 측면에서 인증되었다.
7 세 시간쯤 지나서, 아나니아의 아내가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왔다.
8 베드로가 그 여자에게 물었다. “그대들이 판 땅값이 이것뿐이오? 어디 말해 보시오.” 그 여자가 대답하였다. “예, 그것뿐입니다.”
9 베드로가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왜 그대들 내외는 서로 공모해서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고 하였소? 보시오. 그대의 남편을 묻은 사람들의 발이 막 문에 다다랐으니, 그들이 또 그대를 메고 나갈 것이오.”
10 그러자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서 숨졌다.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그 여자가 죽은 것을 보고서,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묻었다.
11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삽비라도 동일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베드로는 그들이 ‘서로 공모해 주님의 영을 ‘시험’ 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러차례 광야에서 반항과 배교를 통해 하나님께 반기를 들 때의 용례로 사용되던 단어다. 베드로는 이 범죄가 단순한 속임이 아니라 그들의 특권과 위치 상승을 위해서-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행하는 선행이 아닌- 이기적인 욕망에 근거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공동체를 향해 아낌없는 헌신과 사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헌신과 사랑을 주고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죽었고, 사람들은 모두 ‘크게 두려워’했다.
이 두려움은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들이 함부로 하나님의 영을 속이고 자신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시도를 원천봉쇠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의 본문에서 ‘기적’ 그 자체가 아니라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나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선행’ 그 자체가 아니라 ‘선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곧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우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간절한 행위의 동기이다. 오늘 우리의 삶에 행위의 동기가 무엇인지 점검해보길 소망한다. 우리의 동기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기 위함이 되길 소망한다. 어떤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우리 교회에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