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셔서, 우리의 지식으로는 그분을 알 수 없고, 그분의 햇수가 얼마인지도 감히 헤아려 알 길이 없습니다.
27 물을 증발시켜서 끌어올리시고, 그것으로 빗방울을 만드시며,
28 구름 속에 싸 두셨다가 뭇 사람에게 비로 내려 주십니다.
29 하나님이 구름을 어떻게 펴시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 계신 곳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30 온 하늘에 번개를 보내십니다. 그러나 바다 밑 깊은 곳은 어두운 채로 두십니다.
31 이런 방법으로 사람을 기르시고, 먹거리를 넉넉하게 주십니다.
32 두 손으로 번개를 쥐시고서, 목표물을 치게 하십니다.
33 천둥은 폭풍이 접근하여 옴을 알립니다. 동물은 폭풍이 오는 것을 미리 압니다.
고대 근동의 설명에 따라서 바알은 천둥과 비의 신이고 풍요의 신이다. 그러나 엘리후는 하나님이야말로 바로 진짜 하나님이심을 바르게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초월적’ 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아무도 알 수 없는 방식, 우주의 운영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고통과 아픔, 즐거움 등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월적 하나님을 강조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결국 하나님 편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이지 인간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아니다. 진짜 중보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두 입장 모두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존재는 양쪽의 본질을 공유해야한다. 즉, 참 하나님, 참 인간이어야만 가능하다.
1 폭풍이 나의 마음을 거세게 칩니다.
2 네 분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천둥과 같은 소리를 들으십시오.
3 하나님이 하늘을 가로지르시면서, 번개를 땅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가로지르게 하십니다.
4 천둥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나면, 그 위엄찬 천둥소리가 울립니다.
하나님의 천둥과 같은 소리는 엘리후의 마음을 폭풍이치듯이 만든다. 하나님의 말소리는 우주에 울리며 위엄찬 소리가 그 통치를 알린다. 우리는 시편 29편에서도 우렛소리를 내시며 많은 물 위에 계시며 위엄찬 소리로 우주를 통치하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폭풍은 신비로운 힘이지만 하나님께서 관리하시며 사용하시는 힘이다.
5 하나님이 명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6 눈에게 명하시면 땅에 눈이 내리고, 소나기에게 명하시면 땅이 소나기로 젖습니다.
7 눈이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봅니다.
8 짐승들도 굴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눈비를 피합니다.
천둥으로 하늘을 울리는 소리처럼 일하시는 하나님은 기상을 통제하신다. 그 예시로 눈과 비를 다루신다. 조금 더 뒤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 이런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욥이 알 수 있느냐 질문하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엘리후는 이 일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적절하게 지적한다. 초월적 하나님을 인간과 짐승들은 그저 ‘보고 피할 뿐’이다.
9 남풍은 폭풍을 몰고 오고, 북풍은 찬바람을 몰고 옵니다.
10 하나님이 쉬시는 숨으로 물이 얼고, 넓은 바다까지도 꽁꽁 얼어 버립니다.
11 그가 또 짙은 구름에 물기를 가득 실어서, 구름 속에서 번갯불이 번쩍이게 하십니다.
12 구름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뭉게뭉게 떠다니며,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이 땅 위의 어디에서든지 이루려고 합니다.
13 하나님은 땅에 물을 주시려고 비를 내리십니다. 사람을 벌하실 때에도 비를 내리시고,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실 때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우주 속에 하시는 일들을 설명한다. 남풍과 북풍을 통해 차가운 구름과 비가 내리는 일들 모두가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이것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기도, 은혜를 내리시기도하신다. 한마디로 이 모든 일들에는 ‘목적’이 있다. 자연의 일들에도 ‘목적’이 있다면 인간의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우리가 이전의 본문에서도 살펴봤었던것처럼 엘리후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교훈과 돌이킴을 위해 사용하시기도 한다. 13절에 따르면 비를 내리실 때도 사람을 ‘벌하시기 위한 목적’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목적이 우선적으로는 ‘회초리’처럼 기능하고 이해하고있음을 알 수 있다.
14 욥 어른은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정신을 가다듬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신기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15 하나님이 어떻게 명하시는지, 그 구름 속에서 어떻게 번갯불이 번쩍이게 하시는지를 아십니까?
16 구름이 어떻게 하늘에 떠 있는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이 놀라운 솜씨를 알기라도 하십니까?
17 모르실 것입니다. 뜨거운 남풍이 땅을 말릴 때에, 그 더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신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18 어른께서 하나님을 도와서 하늘을 펴실 수 있습니까? 하늘을 번쩍이는 놋거울처럼 만드실 수 있습니까?
19 어디 한 번 말씀하여 보십시오. 하나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무지몽매하여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20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하여,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하여 하나님께 나를 멸하실 기회를 드린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도 욥을 향해 비슷한 질문들을 던지실 것이다. 하지만 엘리후가 던지는 질문과 하나님이 던지시는 질문이 비슷하더라도 그 의도나 내용이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창조의 능력을 따라서 하늘을 펴서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당연히 그 대답은 ‘할 수 없다’ 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 사이에서 이정도의 큰 간격이 있다면 인간편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향해 외쳐봐도 하나님께 드릴 말씀이 없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심판에 의해 멸해질 기회만 만들어질 뿐이다.
21 이제 하늘에서 빛나는 빛이 눈부십니다.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밝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하늘이 맑아졌습니다.
22 북쪽에는 금빛 찬란한 빛이 보이고, 하나님의 위엄찬 영광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23 하나님의 권능이 가장 크시니, 우리가 전능하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을 대하실 때에, 의롭게 대하시고, 정의롭게 대하여 주십니다.
24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무시하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찬란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욥이 앞으로 가도 뒤로가도, 좌로도 우로도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앞에 하나님은 발견할 수 없는 존재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인간들을 무시하실 것이다.
이렇게 엘리후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존재시다. 위대하고 엄위하시며 찬란한 빛 같으신 분을 파악할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설명에서 맞는 이야기다. 하나님은 분명히 그렇게 위대하심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맞추어주심’으로써 자신을 계시하셨다. 자연만물 속에서, 인간의 양심 속에 하나님의 맞추어주심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만큼은 하나님을 느끼고 감각할 수 있게 하셨다. 엘리후의 지혜는 한쪽 측면, ‘하나님의 편’에서 설명할 때는 충분했지만,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모두 막아버린것과 다름없다.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나아갈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는 욥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이 될 수 없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답변하실 차례다. 그 모든 고통과 악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실 것인지, 우주의 쳬계와 질서를 어떻게 다스리고 계시는지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 또한 욥의 지식체계 안에서 ‘맞추어주심’일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에서 우리 인간에게 최고의 맞추어주심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인간의 한계 속으로 직접 들어와 우리에게 맞추어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 맞추어주심의 신비가 있었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친밀한 교제가 가능해졌다. 엘리후가 말한 초월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맞추어주시며 기꺼이 이 땅으로 오신 신비를 생각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
묵상 포인트
1.
하나님의 신비는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다.
2.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맞추어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3.
최고의 맞추어주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심이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초월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