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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고통과 고난이 재료가 되어 / 사도행전 16:16–40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6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17 이 여자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 하고 외쳤다.
18 그 여자가 여러 날을 두고 이렇게 하므로, 바울이 귀찮게 여기고 돌아서서, 그 귀신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 하고 말하니,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
기도하는 곳으로 갔다라는 표현은 그들이 지속적으로 가던 기도의 장소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곳에서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만나게 된다. 헬라어 표현으로 ‘파이돈’인데 아폴로가 델피 근처에서 죽인 암컷 용을 지칭하는 귀신을 가르킨다. 후에 파이돈은 ‘점치는 귀신’을 지칭했고 복화술사들이 이 이름을 가져다 섰다. 점을 쳤다는 것도 ‘복화술’을 통한 것이었을 것이고 상당한 영매 능력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많은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그 여종의 ‘주인들’이 있고, 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바로 이 여자가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면서 ‘높으신 하나님의 종’, ‘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여자의 큰 소리로 외침은 한번이 아니라 계속, 지속적으로 외쳤다. 누가는 바울이 이 상황을 ‘불편하고 괴롭게’ 느꼈다. 왜냐하면 로마 사람들이 이 상황을 해결했을 때 보일 반응이 긍정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귀신은 떠나가 버린다.
바울의 기적은 단지 여자의 ‘큰 소리’를 제거한 것만이 아니라 그 능력을 제거해버렸다. 이제 문제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를 통해 이득을 얻던 사람들이 폭발했다.
19 그 여자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광장으로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다.
20 그리고 그들을 치안관들 앞에 세워 놓고서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인데,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21 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무리가 그들을 공격하는 데에 합세하였다. 그러자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그들을 매로 치라고 명령하였다.
23 그래서 이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그들에게 매질을 많이 한 뒤에,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그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24 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그녀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능력이 사라져버리자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관원에게 끌고간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로마시민’이라고 소개하면서 로마 시민으로써는 받아들일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부당한 풍속이라고 선전한다. 사건은 매우 심각하게 흘러간다. 받아들일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함으로써 ‘도시를 소란’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형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이런 반란은 추방 또는 시민권 박탈과 재산 몰수, 극심한 경우에 사형으로 죗값을 물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빌립보는 작은 로마로 여겨졌고 역사적으로 아우구스투스 편에서 전투를 벌인 곳이기 때문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도시민들로 가득했다. 따라서 그런 ‘로마’의 특권의식과 자부심을 가진 이들로써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황제’와 그의 질서와 나라를 홍보하는 것이 그야말로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는 것으로 여길만 했다.
결국 무리는 매우 분노하여 바울 일행에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옷을 찢고, 벗기고, 매로 침을 당한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호소하지 않는다. 만약 이때 미리 알렸더라면 형벌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써 신분을 드러냈을 때 유대교 회중들의 반응은 더욱 냉랭해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선교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고발하는 자들이 자신들을 ‘로마 시민’이라고 소개하고 그에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선교적인 측면에서 로마 시민권자라는 언급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심한 매질을 당한 후에 감옥에 갇히게 된다. 여기에서 심한 매질은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 나오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로 보인다. 심한 태형은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간수는 깊은 감방에 두고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운다. 깊은 감방에 두었다는 것은 가장 안쪽 가장 안전한 곳에 두었다는 말이고 차꼬에 채웠다는 것은 절대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매우 고통스럽게 몸이 고정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25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28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 하고 외쳤다.
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볼 때 그들이 전혀 찬양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노래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그 노래소리를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금 이들이 어떤 고통과 아픔 가운데 옥에 갇혀있는지를 알고 있는데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것을 들었다면 상당한 마음의 움직임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고 수갑과 차꼬가 풀린다. 이때 간수는 잠에서 깬다. 그리고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달아났다고 판단해 자결하려고 한다. 바울은 긴급하게 큰소리로 외치면서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다’고 말한다. 사실 죄수들이 도망간 책임의 결과 형벌을 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겨우 그정도의 일’은 아닌 것이다. 작은 로마라 불리는 명예로운 시민들이 그런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예들을 놓쳤으므로 책임을 몰아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순간에 바울이 막아선 것이다.
간수는 ‘구원’에 대해 질문한다. 죽음을 각오했고, 임박한 죽음이라고 느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감옥에 갇혔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두 사람은 노래하고 찬양했다.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무엇이 달라서 다른 선택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답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런데 여기에서 이 믿음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을 구원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 간수장의 영향력을 생각할 수 있으며, 그 영향력이 가족을 포함한 집안에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그야말로 주 예수를 믿음이 ‘교회’의 씨앗이고 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복음에 대한 반응은 상처를 씻어주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한다. 이것의 반응은 매우 이례적이다. 죄수와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잘못하면 처벌받을만한 사안이다. 간수의 책임을 명예롭게 생각한 사람이 이 법적 정확성에 대한 염려나 관심은 뒤로하고 회심하게 만든 죄수들을 돕고 위로하는데 열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 음식을 이방인의 음식이라고 거부하지 않고 함께 먹고 마셨을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음식 나눔은 결코 ‘메시지’와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우리 주님의 식탁은 ‘간수장의 집’에 펼쳐진다. 온가족은 함께 기뻐한다.
35 날이 새니, 치안관들은 부하들을 보내어, 그 두 사람을 놓아주라고 명령하였다.
36 그래서 간수는 이 말을 바울에게 전하였다. “치안관들이 사도님들을 놓아주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오셔서, 평안히 가십시오.”
37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치안관들이 로마 시민인 우리를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공공연히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내놓겠다는 겁니까? 안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석방해야 합니다.”
38 관리들이 이 말을 치안관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였다.
39 그래서 치안관들은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데리고 나가서,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청하였다.
40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떠났다.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상관들은 부하를 감옥으로 보내 놓아주라고 사람을 보낸다. 그 동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결정과 지진이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점은 예상해볼 수 있다. 지진이 신의 분노라면 두 사람의 투옥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놓아주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판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노를 일으키는 실재하는 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가 생겼을 것이고 이미 간수장의 집안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신변을 보호받는데 적절한 로마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그리고 그 사실은 효과적이었다.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 때문에 두려워하며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치안관들이 능력을 잃어버린 여종의 주인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기 원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들은 지역의 유지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바울과 실라가 치안관들이나 지역 유지들과의 싸움에서 오히려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영적으로 철저히 패배했고, 오히려 ‘부탁하는 존재’들이 된다.
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오히려 교회의 탄생과 하나님의 실재와 영광을 드러내는 재료가 된다. 하나님의 선교가 암초를 만나고 좌초할 것처럼 보여도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반드시 계획을 이루시고 성취하신다. 우리는 마침내 승리하는 승리의 편에 서 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도 좋다. 그 은혜와 승리의 길에 동참하는 길이 괴롭고 힘들어 보여도, 우리 주님께서 그 모든 아픔과 고통에 마땅한 보상을 영원한 생명 속에 제공하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믿는다. 오늘 그 길에 동참하기를 다시 한번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