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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제자도와 변화 / 마가복음 8:14–26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들이 탄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16 제자들은 서로 수군거리기를 “우리에게 빵이 없어서 그러시는가 보다” 하였다.
8장의 시작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났던 급식 기적이었다. 이점을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빵’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미련해보인다. 게다가 예수님의 초점은 ‘빵’ 그 자체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배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것이지, ‘빵’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룩’이라는 존재는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로 소개될 때는 긍정적인 사례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대게는 ‘변질’ 시킨다는 측면에서 ‘악한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에도 아마 ‘변질’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가르침에 대해서 전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자 예수님은 이에대한 가르침을 전개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 제자들은 전혀 초점을 잡지 못했다. 예수님의 의도를 생각해보면 바로 직전에 있었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표적’을 구했던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들이 ‘표적’을 구한 이유는 ‘증거’를 달라는 것이고, 이미 증거를 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헛된 증거를 달라고 말하는 그들의 ‘변질된 믿음과 태도’에 대한 지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17 예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 너희는 남은 빵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열두 광주리입니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남은 부스러기를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일곱 광주리입니다.”
21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의 깨닫지 못함과 무디어진 상황에대해서 따끔하게 질책하신다. 제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기억하지 못한다. 보지 못함, 듣지 못함, 기억하지 못함이 이들의 무디어진 상태에 대한 진단이다. 바꾸어말하면 그들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보고 듣고 기억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기적을 보았고, 들었지만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기억을 다시 불러 일으키시며 그들이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을 상기시키신다. 그것은 이전 두 번의 급식 기적들이었다. 그것으로 남은 광주리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도 지적하신다. 그들은 ‘빵’이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어야 했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들이 빵을 가지고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예수님은 그것에 주목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빵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변질’시키는 자들이다.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눈 먼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와서 손 대 주시길 구한다. 예수님은 눈 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신다. 우리가 이전의 기적에서도 반복적으로 살펴보듯이 예수님은 많은 군중들 속에서 보이게끔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보이는 표적을 달라고 요청함에도 예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실 생각이 없으시다.
다만 예수님은 매우 가까이에서 눈먼 사람을 대하신다. 그 손을 붙드시고 나가시며, 눈에 침을 뱉으시고, 손을 얹으신다. ‘침’에 대해서는 이전에서도 다뤘듯이 당시에 황제의 침의 경우에는 치료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되었었다. 지금 이 사람은 ‘눈 먼’ 사람이므로, 그 사람에게서는 ‘예민한 감각’으로 느껴질 것들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행동들이 이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치료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기적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사람을 ‘나무’라고 칭하는 이유가 왜 인지는 알 수 없다. 이전에 볼 수 있는 사람이 이후의 상해에 의해서 다친 상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완전히’ 보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 사람이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예수님이 다시 손을 얹으시자 시력을 완전히 회복한다. 여기에서 똑똑히 보게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불확실성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말해주고있다.
오늘의 본문에서 ‘보지도 듣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제자들’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보게 된 눈 먼 사람’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제자들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람인지, 나무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눈먼 사람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친밀하고 선명한 이끄심으로 반드시 눈이 열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가르침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선명히 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단계에 속해있는지 생각해보자. 볼 수 있었던 우리의 눈이 다시 띄고,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비밀과 섭리가 선명히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기적이 우리에게 있길 바라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