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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지속가능한 세계 / 신명기 22:1–12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 당신들은 길 잃은 이웃의 소나 양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그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2 또 당신들은 그 이웃이 가까이에 있지 않거나,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 짐승을 당신들의 집에 끌어다 두었다가, 그 주인이 찾을 때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3 나귀도 그렇게 하고, 옷도 그렇게 하십시오. 그 밖에도 이웃이 잃은 것이 무엇이든지, 당신들이 발견하거든 그렇게 하고,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4 이웃의 나귀나 소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반드시 그 이웃을 도와 그것을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이 명령에서 ‘못 본 체하지 말고’ 라는 조건이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된다. 문자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숨지 말라 인데, 예수님의 예화중에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 체 지나가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웃이 돌보고 있던 이웃의 소나 양을 보고 못 본 체하는 것은 이웃의 어려움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본성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어려움을 돌보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어야 한다. 이렇게 어려움을 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관여하라는 명령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결코 ‘이기적인 물질주의 세계관’을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여하며, 돌보고, 살피고, 함께 보살피라고 명령한다. 그 근거에는 그 모든 것들의 주인이 결국 하나님이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동참하는 청지기이다.
5 여자는 남자의 옷을 입지 말고,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지 마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이 명령이 여자에게 바지를 입지 말라고 하거나, 남자가 치마를 입지 말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면 이 명령은 의복 스타일이나 패션에 관한 명령으로 이해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싫어하신다’ 라는 표현을 ‘패션’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인다. 그렇다면 이 명령은 패션에 관련한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당시의 문화에서 오컬트 적인 제사 의식에서 복장을 바꾸고 동성 성애 행위를 하는 등의 것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심각한 부도덕과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 라는 표현의 연결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6 당신들은 길을 가다가, 어떤 나무에서나 땅에서 어미 새가 새끼나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만나거든, 새끼를 품은 어미를 잡지 마십시오.
7 어미 새는 반드시 날려 보내야 합니다. 그 새끼는 잡아도 됩니다. 그래야만 당신들이 복을 받고 오래 살 것입니다.
우리는 앞서서 열매 맺는 나무에서 열매를 취하고 나무를 찍어버리지 말라는 것과 열매 맺지 않은 나무는 무기를 만들라는 명령을 떠올려볼 수 있다. ‘어미새’와 ‘새끼’는 물론 인도주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미래 식량 공급원을 보존한다는 보호 원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현대에 지속가능한 경제, 환경에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성경은 이미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이런 지속 가능한 생태계에 대한 관심 자체가 ‘생명’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며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한다는 점에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8 당신들은 집을 새로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이 떨어져도 그 살인죄를 당신들 집에 지우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가옥의 편평한 지붕은 다양하게 활용되는데, 잠을 자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손님을 접대하기도 한다. 따라서 지붕에서 떨어져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할 것이다. 브라운은 건축 법규와 허가는 하나님에게서 시작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율법은 매우 기본적인 안전조치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악의’로 벌어지는 사고가 아니라 방심과 부주의, 시설 점검의 부재, 부적절한 관리, 열악한 노동 환경 등에서 발생하는 사고들을 너무나 많이 본다. 어쩌면 이 명령은 앞서서 ‘못 본 체하지 말라’ 라는 명령과 함께 서로의 삶에 관여하기 위해 서로를 보호해줄 책무를 서로가 져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9 당신들은 포도나무 사이사이에 다른 씨를 뿌리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도 포도도 성물이 되어 먹지 못합니다.
10 당신들은 소와 나귀에게 한 멍에를 메워 밭을 갈지 마십시오.
11 당신들은 양털과 무명실을 함께 섞어서 짠 옷을 입지 마십시오.
12 당신들은 당신들이 입은 겉옷 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달아야 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것들이 ‘섞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근원적 측면에서는 이스라엘이 이교도 신앙과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섞이지 않는 순수함’이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구별됨과 차별성이 곧 거룩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으며 일상의 수준에서 차별화된 거룩한 이스라엘의 모습과 삶은 보여지고 증명되었어야 한다.
겉옷 자락 네 귀퉁이에 술을 달아야 한다는 명령 또한 이 ‘일상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겉옷은 낮에는 입는 옷으로, 밤에는 덮는 이불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표현해야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밤낮 가지리 않고 말씀에 순결하게 반응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짐승을 포함해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을 포함해 지속 가능한 세계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해본다면, 그들이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서로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여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어떤 종류의 생명과 관계없는 착취적인 쾌락 방식의 우상숭배를 거부할 때, 지속 가능한 세계의 기본은 구성될 것이다. 이 원리를 지금 현대에도 얼마든지 재가공하여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생명의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의 세계를 그렇게 관리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 또한 그렇게 생명 존중을 근거로한 지속 가능한 세계를 꿈꿔야 할 줄 믿는다. 오늘도 우리의 작은 일들을 통해 생명을 가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