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마음을 다하여 그 거룩하신 이름을 찬송하여라.
2 내 영혼아,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를 잊지 말아라.
시편 기자는 자기 스스로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신명기를 통해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함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이것은 단지 어떤 ‘한 순간’의 결단과 의지로 생겨나지도 않을 뿐더러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인 되새김이 필요하다. 자기 영혼에게 주님을 찬양할 것과 그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진실한 고백으로 은혜에 합당한 찬양과 경배를 드릴 것을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3 주님은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 모든 병을 고쳐 주시는 분,
4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해 주시는 분, 사랑과 자비로 단장하여 주시는 분,
5 평생을 좋은 것으로 흡족히 채워 주시는 분, 네 젊음을 독수리처럼 늘 새롭게 해 주시는 분이시다.
6 주님은 공의를 세우시며 억눌린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변호하신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카테고리과 내용들은 매우 다양하다. 죄 용서, 치유, 생명 보전, 사랑과 자비, 채워 주심, 힘을 주심, 변호하심 등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높여드려야 할 이유와 내용들은 더욱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채워진 은혜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떠올리고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일 첫번째 은혜의 목록에 ‘죄 용서’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런 반역적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엄청난 은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장 먼저 ‘죄 용서’를 떠올려야 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에 반역적 존재들이다.
7 모세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 주셨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의 행적들을 알려 주셨다.
8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
9 두고두고 꾸짖지 않으시며,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신다.
10 우리 죄를, 지은 그대로 갚지 않으시고 우리 잘못을, 저지른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시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 없으신 분이심을 정확하게 전달받는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자신의 기대와 소망을 간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신실하시고 놀라우신 사랑에 꾸짖지 않으시고 노를 끝없이 품지 않으시는 성품을 신뢰할 수 있다. 분명 우리를 향한 진노는 십자가를 향하여 쏟아졌고 우리는 용서받은 자로써 얻는 무한한 은혜를 제공받는다. 그럼에도 우리를 자녀로 삼으셔서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부성적 사랑으로 우리를 때로 징계하시고 때리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진노’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에 기대어 드리는 기도는 ‘감정과 결과’에 대한 것, 즉, 두렵고 무섭게 임하는 파괴적 심판과 채찍질로써의 분노가 아니라, 관계성 안에서 오는 사랑의 질책과 교정을 위한 분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랑을 신뢰한다면, 우리에게 임하는 징계가 우리 죄의 수준에 비해 얼마나 ‘낮은 수준’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의 지은 그대로 갚으신다면 우리는 진노와 심판이 떨어져야 마땅하나 사랑의 질책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노래하고 있다.
12 동이 서에서부터 먼 것처럼, 우리의 반역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시며,
13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
14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부성적 사랑에 대한 표현이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반역은 시시때때로 쉬지않고 벌어진다. 시인의 간절한 간구는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반역을 멀리 치워달라는 것이다. 이 시적 표현 같이 ‘죄’의 본성은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느낀다. 그렇기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식을 가엽게 여겨주시길 간절히 구한다. 하나님도 인간이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심 즉, 겨우 한낱 ‘진흙’에 불과했음을 기억하셔서 죄의 본성을 제거하기 어렵다는 점, 그 오염과 부패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는 점을 기억하며 도움을 주시길 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공의로우심과 정의 앞에 설때 도무지 설 수 없는 존재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만한 자격도 능력도 없다. 우리는 수시로 ‘죄’ 속에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들일 뿐이다. 우리가 받은 그 무한한 은혜에 비교해봤을 때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거대한 빚에 짓눌려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이 연약함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해결하셨음을 기억하자. 우리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한 껏 누리며 찬양할 수 있다. 우리의 그 모든 요구받아 마땅한 의로움을 우리 예수님께서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시편 기자의 결단과 명령처럼 우리 자신 스스로에게 마음을 다하고 뜻을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우리 주님을 사랑하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 삶이 모이고 함축될 때 비로소 참된 하나님의 형상이 온전히 회복된 한 인간이 될 줄 믿는다. 그렇게 주님을 온전히 찬양하는 삶 살길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