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오늘 당신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서, 당신들보다 강대한 민족들을 쫓아내고,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큰 성읍들을 차지할 것입니다.
2 거기에 있는 사람들, 힘이 세고 키가 큰 이 민족은, 당신들이 아는 그 아낙 자손입니다. ‘누가 아낙 자손과 맞설 수 있겠느냐?’ 하는 말을 당신들은 들었을 것입니다.
3 그러나 당신들이 아시는 대로, 오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맹렬한 불이 되어 당신들 앞에서 건너가시며, 몸소 당신들 앞에서 그들을 멸하셔서, 그들이 당신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빨리 몰아내고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본문에서 이스라엘이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라고 스스로 교만해졌을 때 그 땅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강조해서 들어야한다. 그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땅을 차지하는게 아니다. 그들의 힘과 능력으로는 저 큰 아낙 자손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에서 대적할 적들은 없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증명하실 것이다. 그들의 강력한 결단으로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나님만 사랑하기로 선택하고 반응할 때, 그 땅에서 넘치는 은혜는 천대에 이어질 것이다.
4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들 앞에서 내쫓으신 다음에, 행여 ‘내가 착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들여 이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이 민족을 당신들 앞에서 내쫓은 것은,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5 당신들이 마음이 착하고 바르기 때문에 당신들이 들어가서 그들의 땅을 차지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이 민족들이 악하기 때문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당신들 앞에서 내쫓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모세는 계속 강조해서 말한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그들이 ‘착해서’, ‘조건을 성취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은혜로 들어간 것이며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가나안 민족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이유는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스라엘이 착하지 않아도 그 땅에 들어가는 것, 가나안 백성들이 악해서 쫓겨나는 것은 매우 역설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모세의 설명에 따라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사실과 사건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들의 행위가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6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이 좋은 땅을 당신들에게 주어 유산으로 차지하게 하신 것이, 당신들이 착하기 때문이 아님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당신들은 고집이 센 백성입니다.
7 당신들은 광야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얼마나 노엽게 하였던가를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당신들은 이집트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줄곧 주님을 거역하였습니다.
8 당신들은 이미 호렙 산에서 주님을 노엽게 하였으며, 그래서 주님께서는 진노하셔서, 당신들을 멸하려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반역적 존재라는 사실이 강조됨으로써 그들의 ‘선함’과 ‘행위’가 약속을 얻는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된다. 심지어 그들은 약속이 선포되고 선언되는 호렙산 앞에서 그들은 반역을 행했다. 그러니까 오로지 약속의 땅으로 인도되는 것은 유일하게 선하시고 신실하시며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생각해야한다. 약속은 쌍방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세대를 뛰어넘어 언약을 하나님과 새롭게 세워가고 있지만, 그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세대를 뛰어넘는 언약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신실하심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멸절되고도 남을 민족이었다.
9 그 때에 나는 돌판 곧 주님께서 당신들과 세우신 언약을 쓴 돌판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 그 산에서 밤낮 사십 일을 살면서,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10 그 때에 주 하나님이 돌판 둘을 나에게 주셨는데,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수 쓰신 것입니다. 그 두 돌판에는 당신들 총회 날에 주님께서 그 산꼭대기의 불길 속에서 당신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밤낮 사십 일이 지난 다음에, 주님께서는 나에게 두 돌판 곧 언약의 돌판을 주셨습니다.
12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서 여기에서 빨리 내려가거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여, 내가 명한 길에서 이미 떠났으며, 자기들이 섬길 우상을 만들었다’ 하셨습니다.
극명한 대비가 보인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며 사랑으로 율법을 제공하고 계시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반역하여 우상을 만들어낸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하고 계시지만, 이스라엘은 배신으로 일하고 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심을 보이시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신실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오로지 선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며 신실하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배신과 반역, 신실하지 못한 일들로 자신들의 미래를 채워갈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이며 이유다.
우리는 다시 구원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의 연약함과 무능을 생각해볼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무 능력도, 선함도 없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오직 유일한 하나님으로써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시다. 이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죄로 오염된 우리를 꺼내심으로써 확실하게 증명하셨다. 그분의 신실하심이 우리를 붙들어주신다. 따라서 구원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고, 그 구원이 우리의 능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 위대하신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깊이 바라보며 감사로 묵상의 자리에 나아가자.
1.
이스라엘 사람들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그 땅을 차지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2.
이스라엘이 ‘착하지 않은 것’과 가나안이 ‘악한 것’이 보여주는 조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함 때문이었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역적 존재였고,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함 때문이었다. 사건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었다.
4.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며, 계속해서 율법과 약속을 제공하셨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