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 오년에 여호사밧이 아직도 유다의 왕일 때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17 그는 서른두 살에 왕이 되어, 여덟 해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18 그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이 한 대로, 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19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기의 종 다윗을 생각하셔서 유다를 멸망시키려고는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미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서 왕조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아합의 가문이 어떻게 몰락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더욱 공식적 문서로 돌아와 설명하기 시작한다.
아합의 아들 요람 오년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유다의 통치자가 된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인 아달랴와 결혼했는데, 이 결혼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아달랴를 통한 심각한 타격에도 하나님께서 유다를 지키시는 이유는 단순했다. ‘다윗과 자손에게 주신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에게 그에 마땅한 심판과 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내리는 체벌과 같은 역할이지 ‘법적 형벌’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계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20 여호람이 다스린 시대에, 에돔이 유다의 통치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왕을 따로 세웠다.
21 그래서 여호람은 모든 병거를 출동시켜 사일로 건너갔다가, 그만 에돔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호람은 병거대장들과 함께, 밤에 에돔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다. 군인들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갔다.
22 이와 같이 에돔은 유다에 반역하여 그 지배를 벗어나 오늘날까지 이르렀고, 그 때에 립나 역시 반역을 일으켰다.
23 여호람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 에 기록되어 있다.
24 여호람이 죽어, 그의 조상과 함께 ‘다윗 성’ 에 장사되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야기는 여호람의 마지막 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의 영향력에서 모압이 벗어나게 되었다는 3장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온전히 있을 때 다윗과 솔로몬의 영향력은 약속의 땅을 흘러 넘쳐서 주변국까지 미쳤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할 때 주변국들의 반역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것은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을 다스리는 ‘주권자’가 누군가에 대한 문제다. 온 땅과 열방의 정당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거절한 대가는 영향력의 축소이며 배신당함이다.
25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아들 요람 제 십이년에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다.
26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의 나이는 스물두 살이었고, 그는 한 해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이스라엘 오므리 왕의 딸이었다.
27 그는 아합 가문의 사위였으므로, 아합 가문의 길을 걸었으며, 아합 가문처럼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또한 아합 가문 사람이었다. 이 결혼으로 인한 동맹관계는 신앙적으로 이스라엘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그래서 유다조차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들로 채워지는 결과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합의 가문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신 일에 대한 최후에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28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시리아 왕 하사엘과 싸우려고 길르앗의 라못으로 갔다. 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대가 요람을 쳐서, 부상을 입혔다.
29 요람 왕이 시리아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라마에서 시리아 사람들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갔다. 그 때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들었으므로, 여호람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시야 왕이, 문병을 하려고 이스르엘로 내려갔다.
아하시야는 요람과 함께 하사엘과 싸우러 길르앗 라못으로 간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시리아 군대가 요람을 치게 된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우리는 곧바로 ‘아합’의 이야기를 떠올릴수밖에 없다. 길르앗 라못에서 아합은 죽임을 당했다. 아합의 아들도 길르앗 라못에서 부상을 입게 된다. 이스르엘은 아합 가문의 멸문이 일어나는 장소가 될 것이다.
우리는 2-8장 전반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먹이시고 풍요롭게 하실 수 있으시며 어떤 방식으로 위기와 위험에서 건져내실 수 있는 분이신지를 읽어왔다. 분명 쉽지 않은 시대였고 감히 상상하기 힘든 사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분명히 안전한 보호를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하나님의 기적적 사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회개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위대한 승리와 기적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도 믿지 않기로 작정한 듯한 아합 가문의 사람들, 그리고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유다의 여호람과 아하시야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함에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보호받는 유다처럼 우리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 때 우리의 연약함에도 보호받게 될 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듣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경험적인 믿음이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것은 늘 항상 연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다. 경험보다 우리의 선택과 결단, 방향성의 문제다. 이 방향성이 하나님께로 온전히 향할 때 우리는 기적도, 신실하신 약속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의 방향성이 오직 우리 주님께 고정되길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