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우리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합니다.
33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34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는 썩지 않게 하셨는데,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복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35 그러므로 다른 시편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거룩한 분이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36 다윗은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고, 잠들어서 조상들 곁에 묻혀 썩고 말았습니다.
37 그러나 하나님께서 살리신 분은 썩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은 이어지는 설교에서 성경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시편의 세 본문을 인용해서 설명한다. 첫번째 본문은 시편 2:7절인데 원래는 왕위등극을 위해 사용된 시편이며 하나님께서 그 왕을 자신의 적법한 아들로 공인하는 시편이었다. 바로 이 적법한 왕으로 예수를 선택하신 것인데, 이 왕의 탁월함과 어떤 왕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그분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복,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 썩지 않게 하신 것이 그 증거다. 이 구절들은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윗은 무덤이 존재하지만 예수님의 무덤은 비었다. 죽음에서 살아나심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히 성취된 확실한 증거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확실히 인증하시고 왕위에 앉히셨다는 증거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왕이시고 주인이심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완성된 약속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 이전의 불완전하 체계가 아니라 완성되고 완전한 체계의 왕국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름이 단지 ‘유대인’들에게 한정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동포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동시에 부름으로써 이 부름이 제한 없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오고 있다.
38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9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40 그러므로 예언서에서 말한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41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고 망하여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할 터인데, 그 일을 누가 너희에게 말하여 줄지라도 너희는 도무지 믿지 않을 것이다.’ ”
바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라고 말한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나게 된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율법이 요구하는 능동적 요구 뿐만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께 닿지 못해 당해야만하는 끔찍한 처벌과 수동적인 형벌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요구를 완성시키셨다.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은 그 형벌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뒤에 숨을 때 그 저주와 형벌은 그치고 우리에게는 왕이신 분의 부활 생명의 효력이 전가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은 저주가 십자가로 가려지게되어 ‘의’로 여겨지게 되어 그 생명의 효력을 경험하게된다.
바울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 것도 말씀 속에 예언되었다고 경고한다.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우상숭배적 존재가 될지, 이 기쁨의 소식을 듣고 의로운 존재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42 그들이 회당에서 나올 때에,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
4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였다.
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동네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45 유대 사람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였다.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들은 분명히 이 말씀에서 특별한 지점을 발견했고 ‘많은’ 회심자들이 생겼다. 다음 안식일에 이 말씀을 해달라고 청한 것은 아마도 회당장들 중에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부의 유대인들’도 복음에 대한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복음에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것은 분명히 이방인들이었다. 44절은 온 동네 사람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훨씬 많은 인구 비율을 가졌을 이방인들이 이 말씀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유대 사람들의 질투를 촉발시켰다. 그 ‘시기심’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기 시작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보여준 사역의 ‘외적 열매’에 대한 시기심은 그들의 영적인 어두움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전심’은 복음에 전혀 관심이 없다.
46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담대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들에게 먼저 전해야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판정하므로, 우리는 이제 이방 사람들에게로 갑니다.
47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으니, 그것은 네가 땅 끝까지 구원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48 이방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들의 반대에 담대하게 맞서 반응한다. 분명 이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져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이 말씀을 배척하고 스스로 합당하지 못한 선택으로 ‘저주’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과 상관없이 복음은 ‘모든 인류’에 열려있으므로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신발의 먼지를 털듯이 떠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다. 이제 구원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그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우리는 1장 8절에서 사명의 선언이 땅 끝까지 이르르리라는 것이 이미 예고 되었으므로, 그 과정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방 사람들은 이 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들은 모두 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된다. 이 설명을 통해서 복음의 효력은 이미 예수님의 선택에서 발효되며 이들을 예수님께서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구원의 주권은 오직 주님께 달려있다. 이방인들이 돌아오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임을 확인했던 베드로의 사례와 마찬가지다. 그렇게 복음은 온 지방에 퍼져나간다.
5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51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대사람들은 성의 지도층을 움직인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쫓아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해서 이들을 괴롭게 만들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간다. 이 말은 그 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다시 안디옥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 돌아옴은 전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와 제자들’을 위한 것일 것이다. 따라서 선택하신 자들, 그 제자들은 박해와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과 성령충만함을 통해 버티고 이길 것이다.
복음은 선명하게 우리 주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으로 인정되셨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왕이 되신 주님께서 모든 죄와 저주를 해결하셨으므로 그분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그 죄와 저주의 비참함이 더이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왕이신 분의 영원하신 생명이 선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차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복음에 질투하며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뿐이다. 반대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가 그대로 영향력을 미칠텐데, 그것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서 얻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선택하는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얻은자들이다. 우리에게 어떤 죄와 저주가 최종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완성된 나라가 아니므로 그 치열한 싸움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왕이신 분께서 마침내 모든것을 완성시키실 날이 올 것이다. 그날에 우리의 모든 걱정과 염려가 씻은듯 사라지고 영원한 생명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올때까지 박해와 아픔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기쁨과 성령으로 굳게 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 주님이 그런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오실줄 믿는다. 오늘 그 복음 안에 굳게 서 있기를 다시한번 작정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