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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뒤섞인 심판과 회복 / 예레미야 30:12–24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하필QT] 뒤섞인 심판과 회복 / 예레미야 30:12–24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2 나 주가 말한다.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가 맞은 곳은 치유되지 않는다.
13 네 송사를 변호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네 종기에는 치료약이 없으며, 너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14 그래서 너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모두 너를 잊고, 더 이상 너를 찾아오지 않는다. 네 죄악이 크고 허물이 많기 때문에, 내가 원수를 치듯이 너를 치고, 잔악한 자를 징계하듯이 너를 징계하였다.
15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상처를 입었다고 부르짖고,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고 호소하느냐? 네 죄악이 크고 허물이 많아서, 내가 이런 벌을 너에게 내린 것이다.”
예루살렘의 심각한 상처에 대해서 여러가지 표현이 이용된다. 상처, 맞은 곳, 종기 등인데 이 상처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받을 기회가 상실되어있다. 어떤 것으로, 누구도 치료할 수 없다. 확정적이고 치명적인 상처와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상태의 비극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의 상처에대해서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못하며, 제대로된 치료자에게 고쳐달라고하지도 하지도 않는다는데서 더욱 심각하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께 되돌아가 참된 치료자이신 분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회복은 바로 그 ‘치료자’를 찾아 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참된 치료자께 되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한탄하고 부르짖고 호소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그 때’가 되면 치료자께 되돌아오지도 못하며 부르짖고 호소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되돌아가실’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악을 처벌하시고 예루살렘을 고쳐주실 것이다.
16 “그러나 이제는 너를 삼켰던 사람들도 모두 삼킴을 당하고, 네 원수들이 모두 포로로 잡혀 갈 것이다. 이제는 너를 약탈한 사람들이 약탈을 당하며, 너를 탈취한 모든 사람이 탈취를 당하게 하겠다.
17 비록 사람들이 너를 보고 ‘시온은 쫓겨난 여자요,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인이다!’ 할지라도, 진정 내가 너를 고쳐 주고, 네 상처를 치료하여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루살렘을 집어 삼켰던 모든 것들이 집어 삼킴을 당하고 원수들조차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도구’로써 이스라엘을 징벌한 것이지, 그들이 잘나고 대단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나라여서 예루살렘을 심판했던게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을 ‘허용’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저지른 ‘악’에 대한 책임과 심판이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의 ‘치명적’ 상처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치료하실 것임이 선언된다. 하나님은 고쳐주시고 치료하여 주실 것이다. 예루살렘이 하나님께 되돌아오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되돌아가실 것이다.
18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야곱의 장막들을 회복하여 놓고, 야곱의 거처를 불쌍하게 여겨, 폐허의 언덕에 다시 성읍을 세우고, 궁궐도 다시 제자리에 세우게 하겠다.
19 그러면 그들로부터 감사의 노래가 터져 나오고, 기쁨의 목소리가 퍼져 나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번창하게 할 것이니, 그들의 수가 줄지 않을 것이며,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할 것이니, 그들이 멸시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0 그 자손이 옛날과 같이 회복되고, 그 회중이 나의 앞에서 굳건해질 것이다. 그를 억압하는 모든 사람을 내가 벌하겠다.
21 그들의 지도자가 같은 겨레 가운데서 나오고, 그들의 통치자가 같은 민족 가운데서 나올 것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그는 나에게 가까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에게 가까이 올 수가 있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22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야곱의 장막들에 대해 오늘 새번역은 ‘회복하여 놓고’라고 되어 있지만 원문의 직역은 ‘되돌아가게 하고’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읍과 궁궐도 다시 제자리에 ‘되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되돌아감’이 ‘하나님께 되돌아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되돌아오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되돌아오심을 통해 그들은 되돌아갈 수 있게 되며 감사와 기쁨과 번영과 영화가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되돌아오심’은 새로운 통치자가 태어날 것임이 예고되는데, 새로운 통치자는 이전의 한계있고 부족함으로 가득차 있으며 죄의 속성에 찌들어있는 왕이 아니다. 새로운 통치자, 왕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간다. 목숨을 걸고 기꺼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죄없는 자만 가능하다. 바로 그 ‘왕’의 등장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그 왕의 통치를 받는 백성을 ‘나의 백성’이 되게 만드시며 직접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선언하신다.
23 주님의 진노가 폭풍처럼 터져 나온다.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악인들의 머리를 후려친다.
24 주님께서는 마음 속에서 뜻하신 바를 시행하고 이루실 때까지, 그 맹렬한 진노를 그치지 않으신다. 마지막 날에야 너희가 이것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악인들 위에 쏟아지고 퍼부어져 휘몰아칠 것이다. 예루살렘에 일어날 회복과 소망에 대해서 이야기 되다가 갑자기 악인에 대한 폭풍과 같은 심판을 예고하시는 것을 주의깊게 생각해봐야한다. 그들은 ‘회복’을 경험하겠지만 계속되는 경고를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 지금 평탄하고 괜찮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맹렬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속히 하나님께 되돌아가야만 한다.
심판과 재난 뒤에 소망과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심판과 회복은 계속해서 뒤섞여 제시되고 확인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그 회복을 위해 그 백성을 위해 ‘되돌아 오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악’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주님께서 왕으로 오신 사건은 하나님 아버지께 기쁘게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위로가 제공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 우리의 치명적인 상처를 되돌아보며 하나님께 되돌아가지 않고 눈물과 부르짖음만 있는 상태를 회개하게 만든다.
오직 우리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 참된 회개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새롭고 완전하신 치료자요 통치자이신 주님 안에 회복을 경험하길 간절히 구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