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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QT]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 열왕기하 9:14-26 / #매일성경 #큐티 #성경공부

14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는, 요람을 칠 모의를 하게 되었다. 그 때에 요람은 이스라엘 전군을 이끌고, 시리아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의 라못을 지키고 있었다.
15 요람 왕이 시리아 왕 하사엘과 싸울 때, 시리아 사람에게 다친 상처를 치료하려고 이스르엘로 돌아와 있을 때였다. 마침내 예후가 말하였다. “장군들이 나와 뜻을 같이 한다면, 아무도 이 성읍을 빠져 나가서, 이스르엘에 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16 그런 다음에 예후는,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다. 요람이 그 곳에서 병으로 누워 있었다.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요람을 문병하려고 벌써 거기에 와 있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예후는 자신을 왕으로 인정한 군사들과 함께 요람을 칠 모의를 하게 된다. 우리가 이전 장면을 살펴봤던 것처럼 이미 요람은 하사엘과의 전쟁에서 부상을 입었고 후방인 이스르엘로 빠진 상태다. 예후는 이 전쟁에서 중요한 지점인 길르앗 라못에 아직 남아있었고 이스르엘로 돌아간 요람을 치기 위해서 회군한다. 그리고 회군한 그 시점에 유다의 아하시야도 있었다. 앞서 지적한것처럼 아하시야의 아내는 아합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아합의 가문을 쓸어버리시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하시야를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17 이스르엘의 망대 위에 서 있는 파수병이, 예후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군대가 오고 있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러자 요람이 말하였다. “기마병을 보내어 그들을 만나,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아라.”
18 그리하여 기마병은 그들을 만나러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왕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19 그리하여 왕이 두 번째 기마병을 보내자, 그가 그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평화의 소식이냐고 물어 보라 하셨소.” 그러자 예후가 말하였다. “평화의 소식인지 아닌지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20 파수병이 왕에게 또 보고하였다. “그들에게 간 전령이 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친 듯이 말을 모는 모습이, 님시의 아들 예후와 비슷합니다.”
21 이 말을 듣자, 요람은 “병거를 준비하라!” 하고 명령하였다. 병거를 준비하니,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가 각각 자기의 병거를 타고 예후를 만나러 나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땅에서 그를 만났다.
이야기는 열왕기하 1장에 등장하는 엘리야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자신의 병이 낫게 될 것인지를 엘리야에게 질문하려 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죽은 일이 두번 일어났고, 세 번째 오십부장만이 살아남게 된다. 오늘 이야기는 달려오는 예후를 향해 기마병을 보내는 이야기인데, 이 기마병은 요람 입장에서는 ‘사라져버린 군인’과 다름없다. 오히려 예후의 힘을 더욱 크게 만들 뿐이다.
요람은 반역이 일어났다고 판단하고 병거를 준비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땅에서 만남이 이뤄진다.
우리는 이 장면이 원래 ‘엘리야’에게서 일어났어야하는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예후에게 기름부을 것을 예고하셨고, 나봇의 땅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아합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건은 곧바로 일어나지 않았었다. 아합이 회개하고 뉘우침으로 심판이 유예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심판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었다. 유예된 심판에 마음놓고 범죄한 자녀들로 인해 그 심판이 확정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명령이 이제 엘리사 시대에, 예후를 통해 성취된다.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예후 장군, 평화의 소식이오?” 하고 물었다.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이 저지른 음행과 마술 행위가 극에 달하였는데, 무슨 평화가 있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23 요람이 그의 손에 쥔 말고삐를 급히 돌려 도망하면서, 아하시야에게 소리쳤다. “아하시야 임금님, 반역이오.”
24 예후가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등을 겨누어 쏘자,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나갔다. 그는 병거 바닥에 엎드러졌다.
25 예후가 요람의 빗갈 시종무관에게 말하였다.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시오. 당신은, 나와 당신이 그의 아버지 아합의 뒤에서 나란히 병거를 타고 다닐 때에, 주님께서 그를 두고 선포하신 말씀을 그대로 기억할 것이오.
26 주님께서 아합에게 ‘내가 어제,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함께 흘린 피를 분명히 보았다. 바로 이 밭에서 내가 너에게 그대로 갚겠다. 이것은 나 주의 말이다’ 하고 말씀하셨소. 이제 당신은 그 주검을 들고 가서, 주님의 말씀대로 그 밭에 던지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후는 요람이 어머니 이세벨의 우상숭배에 적극적으로 눈감고 있으며, 그로인한 부패가 심각해진 상황에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점을 빗갈 시종무관을 통해서 증명한다. 이미 그들은 아합에게 떨어질 심판이 예고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과정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신원하심, 신실하신 성품에 따라 역사하심은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끝이 아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 영원 속에 계시는 분은 반드시 계획하신 일을 성취하고야마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왜 이렇게 더디신가, 우리 주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가, 우리의 억울함을 언제 갚아주시는가 호소할때가 많다. 정말 하나님은 그렇게 더디게 일하시는것처럼 보이며 때로는 일하시지 않는것처럼 느껴질때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다고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멈춰있지않으며, 하나님의 신원하심이 사라지는것이 아니다. 마땅한 심판과 보응은 일어난다. 우리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오늘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쉬지않고 일하고 계시며 마침내 그 계획을 성취하고야마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자. 그것이 우리를 생명의 길을 걷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살기를 결단하며 묵상의 자리로 나아가자.